이윤기선생을알게된것은순전히’장미의이름’때문이다.
움베르토에코의그소설을이선생이번역했기때문이다.
그게1986년이었을것이다.
인터넷도없던시절,어떻게움베르토에코를좀알게됐다.
철학자,기호학자인그양반의잘다듬어진학문적성취에다
문학적소양이더해진작품이’장미의이름’아니던가.
이책이우리나라에서번역됐다는사실하나만으로도좀뿌듯했다.
단행본으로번역돼나온그책을얼른샀다.
단숨에읽으려했는데,그게좀어렵다.
중세수도원에기호처럼얽히고섥힌얘기들이쉬울리가있겠는가.
그런전제를깔고읽기시작했지만,아무래도너무어렵다.
번역의문제,번역이잘못된것아닐까.그게떠올랐다.
수도원내부를그린도표가있는데,책에나온내용과다르다.
도표를새로그려보기도했다.
결국중도에읽기를그만뒀다.
번역은어렵다.그래서흔히들번역을제2의창작이라고하지들않는가.
알고지내던어떤선배분과
번역의어려움에관해얘기를나눈게그무렵이었을것이다.
재미있는경구가있었다.
‘Timefileslikeanarrow’
‘흐르는세월은화살과같다,’이말을잘못번역하면어떻게될까.
‘타임이라는파리들은화살을좋아한다’
번역의오류를수록한일본책에나온다는얘기다.
‘장미의이름,’그번역본을어디엔가팽개쳐놓고한동안이윤기선생을잊었다.
그런데,그얼마후신문에이런기사가나왔다.
‘장미의이름,’그번역본에오류가많다는것,
그리고번역한이선생이그오류를인정했다는것이다.
원래이탈리어語판이그책의영어판으로번역을했으니그럴수밖에없을것이다.
라틴어원전에대한이해가없으면,그책을올케읽을수가없다.
투박한직역이었다.그무렵기억으로,이선생은그걸고백하고있었다.
라틴어를공부하겠다.그리고나서번역의오류부분을고치겠다.
그후이선생은미국의컬럼비아대학인가로공부하러떠난것으로알고있다.
그리고또얼마후,신문에이런책광고가실렸다.’장미의이름’을낸출판사다.
먼저출간된책의번역의오류를고친수정판’장미의이름’이나온것이다.
처음나온게단행본이었다면,수정본은상,하로된2권짜리였다.
그때,이선생의집념이대단하다는걸느꼈다.
그러나그렇다고이선생에대해좋은감정이있었다는건아니다.
출판사의상술때문이다.
처음간행된책이잘못돼,수정분을펴냈다면
첫책을사본독자들에대한배려가있어야하는게아닌가.
그것도두권짜리로펴내,가격이만만치않았다.
최소한첫책을산독자들에게얼마간의할인혜택을주면서교환해줘야하는게아닌가.
나의생각은그랬다.그래서출판사에전화도한기억이있다.
물론출판사는나의생각을묵살했고,그렇게해서유야무야됐다.
출판사의상술과번역자를동일선상에놓고볼수는없다.
그러나독자의감정이그런가.
번역자로서의이선생의집념과양심은인정한다.
그러나출판사의얄팍한상술로그게일정부분훼손됐을것이라는것이당시나의솔직한생각이었다.
독자나이선생이나결국같은피해자일수도있지않겠는가.
이선생의그후행적은이미잘알려져있는바와같다.
‘희랍인조르바’등200여편을번역하면서,
우리나라번역문학계에선보배같은존재로활약해왔다.
그뿐아니라,소설과수필분야에서도
선생자신만의독특한문체로독자들의많은사랑을받아왔다.
그런중에서도’장미의이름’은아무래도이선생이가장애착을둔작품으로보인다.
번역의오류를인정하고새로수정본을낸책이니까그럴것이다.
선생의그런마음이드러난게2000년이다.
선생은다시한번’장미의이름’을수정한다.
이번에는한철학박사의지적을수용한것이다.
강유원이라는철학박사가학생들에게그책을텍스트로강의하면서
3백여군데의부적적한번역,원서대비빠져있고삭제해야할부분을엮어
‘장미의이름고쳐읽기’라는60쪽의원고를만들어선생에게전달한것이다.
선생은그지적을수용한다.
움베르토에코의해박한중세철학지식을이해할수없었음을솔직히토로한다.
그리고지적을해준강박사에게고마움과경의를표한다.
이윤기선생은그해6월에서7월까지강박사가지적한부분중
260군데를바로잡는다.그리고그해7월세번째의개정판을내놓는다.
한책의번역본이수정.개정판을합해세번나온것은
우리나라출판사상처음있는일일것이다.
그이윤기선생이27일심장마비로별세했다는소식이다.
선생의별세소식을접하면서문득’장미의이름’이떠오른것은
그책을통한선생의번역과문학에대한집념,양심,
그리고외경심이새삼느껴지기때문이다.
선생의’장미의이름’도선생과함께하늘나라에상찬됐을것이다.
선생의명복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