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며느님들

어쩌다한번씩가는고향길은언제나바쁘다.

약속이된사항을맞추느라그렇지만,

약간부풀려지고들뜬마음때문이기도하다.

고향은언제나그랬다.

그리던그게항상그곳에있을것같고,

보고싶은사람도항상그곳에있을것같고.

그러니온전한마음일수가없다.

16일점심도그랬다.

모시고간선배님이미리잡아놓으신약속이었지만,

흡사오래전에만나야할그리운사람들을만나러가는기분이었다..

선배님은신신당부를하셨다.잘모셔야한다.잘모셔야한다.

나에게하는당부이겠지만,

언뜻보기에그것은선배님이자신에게하는다짐처럼느껴졌다.

두분이어려운걸음을하셨다.

한분은마산에서,또한분은진해에서오셨다.

이분들을어떻게호칭해야하나.

나의어머니연세보다좀높으니,

어머니라고해도될것이고,그게좀어색하면할머니라고해도될것이다.

아니면그양자를얼머부리며불러도될것이고.

구(具)할머니와이(李)할머니.

두분은고향마산의존경스런어르신인

옥기환(玉騏煥)선생과명도석(明道奭)선생의며느님들이다.

19세기말,나라가스러지는어지러운시기서부터

6.25민족상잔의어려운시기를같이한두어르신은

독립운동과교육사업에헌신한선각자적인민족운동가이다.

특히국난의시기자산가들이가져야할몸가짐을몸소실천한

노블리스오블리주의표상격인분들이다.

두분할머니는이어르신들을모시고한평생가문의영욕을함깨한며느님들이다.

선각자들은원래그렇다.빛이크고밝으면그림자도더길고어둡다.

옥기환(1875-1953),명도석(1885-1954)두어르신이

나라의독립과교육사업,특히향리인마산에쏟은열정과노력은지대한것이다.

그에비해두분이받으신고초도이루말하기어려운것이었다.

해방공간,그리고동족상잔으로이어지는이념대립의부산물까지를고스란이짊어지신것이다.

두며느님은그과정을온몸으로겪고지켜보신분들이다.

그고초는결국한으로남기마련이다.

두며느님의한이없을수있을까.

그러나그한은시아버님에대한절절한그리움과고마움으로승화되어있었다.

"큰사람의풍모는조그만행동에서도그뽄이나타나기마련입니다"

시아버님을회상하며두분할머니가하시는말씀이다.

며느리에대한사랑이지극했던것이다.

두분며느님들의목소리가누구앞서고뒤서고할것없이젖어가고있었다.

시아버님의며느리에대한사랑이지극했다는얘기다.

대갓집의며느리생활이오죽어렵고피곤했겠는가.

이할머니는결국못참고친정으로가친정아버지에게하소연하는지경에까지이르런다.

명선생이그소식을듣고사돈집으로어려운걸음을했다.

그리고는사돈앞에서며느리에게하는말.

"아가야,아가야,니가가는곳이면어디든나도가야하는기라…"

구할머니는풍채좋고덕망높았던시아버지에대한기억이새로운모양이다.

"마산장날인5일과15일엔우리집앞에사람들이줄을섰었지요.

저자거리의걸인들은물론이고지나가는사람들까지줄을이어섰었지요.

그날은바로’옥부자집밥먹는날’이었지요.시아버지는그런방법으로

어렵고배고픈사람들을위해베푸시는분이었지요.

또가족들에게한달중하루는굶게하시기도했지요.

못먹는사람들을생각하자는것이었지요"

재미있는얘기도하셨다.

다름아닌춤에관한얘기다.한평생춤을한번도춰본적이없다는것이다.

"서른무렵젊었을적에친구들과레스토랑에갔는데,

그곳에서어떤남자가같이춤을추자고했지요.

도망치듯나왔었지요.나는죽는줄알았십니더"

이할머니얘기다.그얘기를몇번이나하신다.

농담삼아"그게한이되시는게아닌지요"라고물었더니얼굴이발개지신다.

그러면서도연신그러면안되지요,그러면안되지요하신다.

"세월이우째이렇게빠를수가있지요?

세월이정말깜빡하는순간에지나가버린것같십니더"

두며느님은시간과세월을자꾸말씀하셨다.

아무리어렵고고달픈세월이었지만,결국화살같이지나갔다는얘기다.

그세월속에녹아든인생의무게가결코녹녹치않았을것이다.

두며느님의표정은그러나부족함이없어보였다.

"아이고세월이우째이리빨리흘러가는지…"

식당을나오면서도그말씀이자꾸귀에가물거린다.

선배님이약속을하신다.

다음엔노래방에서더즐겁게모시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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