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희와 성철, 그리고 김 수환

[이철호의시시각각]박정희와성철그리고김수환

[중앙일보]입력2010.12.1520:25

1977년구마고속도로개통식에참석한박정희대통령이해인사에들렀다.방장(方丈)인성철스님을보고싶어했다.해인사주지가백련암에뛰어갔다.“큰스님이절까지내려와영접해주면좋겠습니다.”성철스님은돌아앉았다.“나는산에사는중인데,대통령만날일이없다아이가.”그렇다고박대통령은분노하지않았다.돌아가는길에소중한선물을줬다.해인사옆골짜기의말라죽는소나무들을봤다.“어떤일이있더라도살려내라”는지시에정부는3년간방제에매달렸다.소나무숲은다시싱싱해졌다.정교분리(政敎分離)의아름다운장면이다.

 2000년의일이다.김수환추기경이심산상(心山賞)을받았다.심산김창숙선생은독립투사이자유교(儒敎)의거봉이다.김추기경은관례에따라서울수유리의심산유택(幽宅)을찾아넙죽6번이나큰절을올렸다.조마조마한표정으로사람들이물었다.“어떻게추기경님이절을다하시느냐”고.그는되레의아해했다.“살아계셨다면마땅히찾아뵙고인사드릴어른인데,돌아가셨으니당연하지않은가.”그는심산연구회의살림이어려워지자나중에남몰래작은상자를보냈다.상금700만원에300만원이보태져있었다.이웃종교까지배려하는열린마음과낮은자세가묻어난다.

 필자의종교경험은논산신병훈련소가전부다.일요일마다지겨운사역을피해교회·절·성당으로도망다녔다.“종교집합!”소리가들리면연병장뒤를어슬렁거렸다.앞줄은언제나독실한신자들차지였다.“오늘,기독교가너무많아.”연단의선임하사가고함치면재빨리짧은줄의천주교나불교로갈아탔다.필자의종교는3주연속바뀌었다.이런문외한(門外漢)의눈에도요즘종교갈등은심상찮아보인다.위험수위다.

 얼마전국회에서이슬람채권법안이휴지통에들어갔다.“이슬람채권=테러자금”이란다.돈을주는게아니라빌리는데도이모양이다.왜영국·프랑스·일본은이슬람채권을발행했을까.종교가문제라면왜우리는중동에서원유를수입하는가.의원들이사석에서고백한폐기사유는분명하다.“지역구종교단체에서전화를걸어와솔직히부담을느꼈다.”정치가종교에오염된것이다.미국은뉴욕의그라운드제로옆에이슬람모스크가들어서는것을허가했다.미국민의60%이상이반대한사안이다.미정치지도자들은‘종교간의화해’를내세워눈을딱감았다.표결은9대0만장일치였다.

 요즘우리종교계는퇴행(退行)하는느낌이다.거친표현부터마음에걸린다.템플스테이예산삭감에아무리뿔났어도“앞으로청와대·여당의전화는일절받지마라”는건너무했다.천주교일부사제의성명은‘추기경의궤변’이란제목부터섬뜩하다.“정부를편드시는남모르는고충이라도있는지여쭙고싶다”는비아냥은,감히성직자의표현이라고믿기어렵다.우리는성철스님,김수환추기경의말씀이남을자극한경우를기억하지못한다.항상표현은부드러웠다.

 종교갈등배경을교회장로인이명박대통령에게서찾는사람이적지않다.그럴듯하지만쉽게동의할수없다.크게보면우리사회전체의문제가아닐까싶다.국민적존경을받던큰어른들은사라지고,그들이남긴‘권위의공백’은메워지지않고있다.고만고만한정치인들은종교를표(票)로간주하고있다.스스로정치를오염시키는불길한징조다.이런악순환이이어지면지역갈등·이념대립에종교갈등까지포개지는것은시간문제다.‘사회를위한종교’가아니라‘종교를위한사회’로변질되면끔찍한재앙이기다린다.그나마인구조사결과는유일한위안이다.요란하게포교해온종교의신자는줄고,조용히수행하면서기다려온쪽의신도수는늘고있다.우리사회의균형감각을믿고싶다.그래도불안하다.어느때보다종교의틀을뛰어넘은큰인물의빈자리가아쉽다.무게중심이사라졌다.오늘따라박정희,성철,김수환의얼굴이한층그리워지는하루다.

논설위원 (중앙일보12월16일자)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