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 夜 月

반야월(半夜月).

우리나라대중가요계의’화석’같은존재이다.

1917년생이니올해우리나이로95세다.

칠십수년간무려5천여곡의노래를만들었으니

‘화석’이라는칭호가무색하지않을것이다.

‘울고넘는박달재”불효자는웁니다”한많은미아리고개’등

지난세월,그리고지금도우리의심금을울려줬고울려주는

이老예술가의노래들은우리조선민족의한과슬픔을담은목소리요가락이다.

특히일제강점시기에나온노래들이그렇다.일종의저항가요인셈이다.

그러나영욕의그늘속에도사린그림자도있다.이른바친일전력이다.

일제의압박과강요에의해만든군국가요들이그논란이대상이다.

그러나반야월선생의친일논란은질곡의시대가만들어낸하나의역설이다.

그가만든수많은주옥같은민족의노래들이그역설을압도한다.

더이상이노예술가에게이념의덫칠을가하는것은도리가아니다.

지난11일반야월선생을뵈었다.

한일년만이다.

선생의사무실은명보극장뒷편에있다.

그의또다른사무실이있다.

사무실건물지하의옛날식다방인’지원’이다.

선생을만나뵐려면’지원’엘가야한다.

이날도마찬가지였다.

이날,선생은따님인박희라씨와같이나왔다.

그리고작사가김주명씨등,선생을추앙하고따르는

음악가몇분들도함께자리했다.

옛스카라극장위’진고개’에서식사를했다.

선생은아직도정정했다.

귀가좀어두울뿐,목소리는여전히카랑카랑했고재미있었다.

옛날얘기들,이를테면김두한수하의’구마적’얘기를재미있게들려주었다.

‘구마적’이마산사람이라는것도선생을통해처음알았는데,확인해볼일이다.

선생은마산사람이다.그래서마산에관한노래들을많이만들었다.

대표곡이’내고향마산항’이다.선생의글에고봉산씨가곡을붙였다.

‘무학산말바위’도마산노래다.

그노래얘기를하면서무학산말바위에대한안부를물었다.

잘있다고하니까,그리움에젖는모습이다.

"엄마가죽어말바위부근에있는묘지에묻었지.

무학산말바위를생각하면엄마가생각나고…"

반야월선생은요즘도여전히현역이다.

수년전에몸소결성한’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를통해

우리전통가요보존과개발에앞장서고있다.

그일환으로선생은매월첫째월요일,종로3가옛’우미관’자리에서

‘전통가요부르기모임’을정기적으로개최하고있다.

원로가수들과우리전통가요를아끼고사랑하는각계각층의

인사들이참석,흘러간노래들을함께부르며정을나누고

전통가요사랑의결의를다지는모임이다.

선생은또먼저세상을떠난가요예술인들을기리는추모의모임도

연례적으로개최해오고있다.

매년6월에개최되는이추모제에서선생은일제하암울했던시절,

민족의한이서린전통가요로식민통치에항거했던

가요예술인들의넋을기리면서그들의정신이오늘의우리국민들에게

안식이되기를기원하고있다.

따님희라씨가귀띰을해준다.

"3월모임은7일,월요일입니다.꼭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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