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과 與猶堂

▲다산묘소에서바라다본여유당전경. 다산정약용의생애는크게20년안팍을기준으로세등분해볼수있다.22세때小科인초시에합격,진사가되고이로부터28세때인1789년大科에급제해초계문신으로벼슬길에오른이래18년간을나라와그의후견인이었던정조를위해봉사를한게첫시기다.39세때정조가승하하면서그의천주교이력과활동이문제가되고급기야1801년대규모천주교박해사건인신유사옥에연루되면서18년간의유배생활을하게된게두번째시기.그리고유배생활이해제된1818년고향인馬峴마을로돌아와생을마치기까지17년간의만년생활이마지막시기다.

이런인생곡절에함께하는다산의動線은크게나누어그가태어나유년과소년시절을보낸마재마을,그리고벼슬에있었던서울과유배생활을했던전라도강진,그리고다시돌아온마재마을로그려진다.다산이태어나고뼈를묻은마재마을과그의당호이자서재였던‘與猶堂’은유배지다산초당과함께다산이형성한정치·경세철학과학문적업적의산실이다.특히여유당은그의전저작을모은全書의명칭이기도하지만다산이마재마을에있을때거처한공간으로,말하자면다산학의보금자리나마찬가지다.마재는다산이태어날당시는경기도광주군초부방마현리에속한마을이었다.

다산자신의기록에의하면한강의상류에위치한풍광이아름다운다산의고향이다.다산은자신의고향을‘소내’라고쓰고있다.한강상류이자마재앞을흐르는강을苕川라고불렀기때문이다.다산은고향마을을아끼고사랑했다.소년시절“…어디간들이좋은언덕얻을거냐”며시「還苕川居」로고향을노래하고있는데서도잘드러난다.다산의생가는그의5대조丁時潤이터를잡아지은곳이다.다산은15세때아버지를따라서울에서생활하기까지어릴적시절을마재생가에서보낸다.

그리고그에게유배의어두운그림자가몰려오던39세때고향마을로와저작에잠시몰두한다.이무렵다산은자신의서재를여유당이라이름지었다.여유당의여유는『도덕경』의“신중하라,겨울에시내를건너는것처럼.경계하라,사방의이웃을두려워하듯”에서따온것으로,조심조심세상을살아가겠다는의미를지닌말이다.다산은58세때인1818년18년간의유배생활을마치고여유당으로환향해고단하고지친몸을의탁한다.여유당에서다산은몸과마음을가다듬고자신의철학과뜻을담은저작활동에몰두한다.10여년벼슬살이에서뜻을세운청년시절,그리고유배지강진‘다산초당’에서다져진학문과사상의기틀을이곳‘여유당’에서다시가다듬어웅지를곧추세운것이다.이곳여유당에서다산은과거‘다산초당’에서저술했지만미완성상태였던『經世遺表』44권을마무리한다.그리고유배끝나기전쓴『牧民心書』48권의서문을쓴다.이어이듬해刑獄법정서인『欽欽新書』30권을이곳여유당에서완성한다.다산은주지하다시피‘유배의인생’을살았다.전라도강진땅에서의무려18년이란억압의세월이다.그기간과복권되지않은상태에서의여유당에서의17년이다산인생의후반기이다.

이기간동안다산이이뤄낸학문적업적은경이적인것이다.그는생애동안경집232권과문집267권등모두499권에이르는방대한저작을남겼는데,이들의대부분이그기간에이뤄진것이다.다산의인간적인면모가드러나는500여수에달하는시도그시절의소산이다.마재마을‘여유당’에서다산이보낸만년의시절은어떠했을까.전해지는기록으로다산은학문과저술에몰두하면서도비교적여유있는생활을보냈다고한다.틈틈이여행도즐기고했다는데,인근의용문산도오르고소양강에서뱃놀이를했다는기록도있다.그러나유배에서해제가됐다하더라도복권이되지않은상황이었으니한편으로생활이불편하고어려웠을것이다.다산이“(내집)문앞을지나면서도들르지않는것이이미상례가됐다[過我門不入旣成例]”라고적고있는데서그런점이읽혀진다.친구에게보낸서한에이런대목도나온다.

▲여유당에걸린현판 “流落된7년이래문을닫고홀로웅크리고앉아있노라니머슴종과밥짓는계집종조차도함께말도걸어주지않더이다.낮동안보이는거라고는구름과파란하늘뿐이요,밤새도록들리는거라고는벌레의울음이나댓잎스치는소리뿐이라오…”지난11일찾은마재마을의여유당은오락가락하는장마비에조용히젖고있었다.행정구역상마재마을은몇차례변천을거쳤다.다산시절은경기도광주군초부방마현리였다.그게해방이된후양주군와부면능내리로바뀌었고,현재는남양주시조안면능내리에속해있다.여유당의본래위치는다산유적지입구주차장부근이었으나,1925년대홍수로소실됐던것을1986년복원하면서유적지내에세웠다.사랑채와안채로구성된전형적인중부지방班家의소박한모습이다.여유당의옛자리를알려주는바위표석은지금의여유당왼쪽한켠에있었다.

지난1974년건립한것으로,당시정일권국회의장의친필로‘與猶堂’이란글씨가새겨진바위다.건립기에그내용이나오는데,정일권당시국회의장이다산의후손임을강조하고있다.아이러니한것은‘정일권’이란글씨가다른글씨에비해색깔이달랐는데,자세히보니누군가가이름글씨를지워버리려파낸흔적이있었다.그걸다시새기는과정에서색깔을아예흰색으로칠하지않았나하는생각인데,역사의격세지감을느끼게하는표석바위였다.여유당뒤동산에다산의묘지가있다.다산이생전에‘집뒤의子의방향언덕(屋後負子之原)’에묻도록했다던그지점의묘소다.그곳에다산은풍산홍씨부인과합장돼영면하고있다.

고등학교동창들로보이는아주머니몇이서들묘소에앉아얘기들을나누고있었다.다산에대한얘기들인데,뜬금없이정일권얘기가나온다.그러면서하는말.정일권아들이박근혜와국민학교동창이어떻고저떻고하더니,급기야는연말대선에박근혜가어떻게될것인가로이어진다.다산묘소앞에서도대한민국의혼란스런정치는여전히살아움직이는생물이었다.

다산기념관앞으로남녀학생들이삼삼오오몰려들고있었다.한복차림이다.한여학생에게물어봤더니강원도횡성의민족사관학교학생들이란다.왠일인가고물었더니,민사고학생들의롤모델(rolemodel)이두분인데,그중한분이다산선생이라는것.다른한분은이순신장군이라고했다.다산을숭상하는대한민국의젊고싱싱한학생들이대견해보인다.뭔가희망이느껴지기도하고.학생들사이로보이는다산의초상화영정이미소를짓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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