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
BY koyang4283 ON 5. 21, 2013
우리나라첫대통령대변인은김광섭시인이다.「성북동비둘기」의김광섭시인은1948년7월24일대한민국정부수립과함께이승만대통령의초대공보비서관으로임명돼그직을맡았다.그는대변인으로이런말을남긴다.“하고싶은말을하지못할바에야차라리아무말도하지않겠다.”이런소신이라면‘대통령의입’역할을해야하는처지에서대변인직수행에적잖은애로가있었을것이다.
청와대대변인이란명칭은1960년4·19혁명이후부터다.그해8월취임한윤보선대통령은대통령관저명칭을청와대로바꾸는한편공보비서관과는별도로대변인직제를신설하는데,그첫청와대대변인으로신문기자출신의김준씨를임명한다.그는5·16군사쿠데타로윤대통령이사임하게되자우리헌정사상대통령하야성명을처음발표한대변인이기도하다.
청와대대변인은이때까지만해도그존재가치가그렇게썩부각되지는않았다.그러나박정희대통령시대가되면서그자리도권부의하나로여겨지는전환점을맞게된다.박정희시대는,그의집권이군사무력에의한것이라는점에서法治보다는人治의시대였다.이런권력구조의시대는측근정치시대이기도하다.모든정부권력의요직이측근에의해장악되는상황에서‘대통령의입’이라는대변인의자리도주요권부의하나가된것이다.
이시대청와대대변인들은모두가그야말로박정희의‘충실한입’이었다.대통령의말과생각을어떻게잘다듬고잘전해국민들이잘따라오도록하느냐에,김성진전대변인의말대로“목숨을걸었다.”여기에대통령의마음상태를잘알고담아내는‘심기대변’이라는용어까지등장한다.차지철전경호실장의‘심기경호’도같은맥락이다.박정희시대의이런대변인은대부분이장수한다.김성진대변인이4년5개월을,그리고임방현대변인도4년을넘겼다.이들이박정희시대의이른바‘명대변인’으로꼽혀진다.박정희가시해당한그다음날아침,정부청사칠판에대통령유고사실을울먹이며적어알리던김성진은당시문화공보부장관으로정부대변인이었다.
박정희시대이래청와대대변인은대통령측근이기도하지만대부분언론계출신으로그분야에선상당한평가를받는,능력있는사람들이그자리를꿰찼고이제까지도대개는그렇다.물론기상천외한상식밖의아부등을통해그자리에오른몇몇사람도있다.충성심에다대통령의철학과생각을이론적으로펼칠수있는논리와업무의전문성,그리고그자리에합당한합리성과매너는기본적인덕목이었다.청와대대변인자리는그게기준이고하나의전통이었다.
박근혜대통령의방미중성추문의혹에휩싸인윤창중전청와대대변인은역대이런대변인들에비해특이하고별난존재다.그는한때공무원생활도했지만출신은언론계다.대통령과의관계는보는관점마다다를수있겠지만,그의말로미뤄보면가까운관계인것같다.이를테면박대통령이대통령이되기전1시간이상의독대를갖는등의친분관계도있었고,대통령이그의칼럼에관심이많아직접챙겼다는전언까지있으니말이다.그러나그럼에도불구하고그가대변인이될걸로예상한사람은많지않다.그의극우적이고돌출적인성향과성격때문이기도하지만,그의주변엔‘적’들이많았다는얘기다.그러나대통령으로서는여러관점에서생각이달랐을수가있다.그가대변인이되고세찬반대가있었을때,박대통령이“잘참고견뎌라”는전화까지했다는점에서도그렇다.
그런그가이번에대통령과나라를부끄럽게만드는전대미문의사고를쳤다.사고가나니그에대한부정적인리뷰가새삼지면을뒤덮고있다.결국은그에대한반대의논리가옳았다는얘기다.박대통령이난처해졌다.반대가대세였고옳았음에도불구하고왜그를기용했는지에대한부담을고스란히질수밖에없는처지가됐고,그에대한착잡한심정의일단을밝히고있다.사고후지리멸렬한청와대의처리과정도상당한부담이다.그러나사후약방문일지언정그런판단이들때빨리조치를취하는게그나마후과를줄일수있는최선의방법이다.주변의이른바측근인사를다시한번점검하는것도물론이에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