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시인’ 尹 동주

광복68주년이다.한갑자를훨씬넘긴나라의독립은그세월의바퀴를줄기차게돌리고달려와오늘을이룬바탕이됐다.해마다맞는이런광복의날에떠오르는사람이있다.尹東柱시인이다.일제강점치하저항시인으로주옥같은시를남긴민족시인이기에그렇기도하지만,유독그가떠올려지는것은그의안타까운죽음때문일것이다.

그는해방을불과6개월남겨둔1945년2월16일,조선의지배국인일본의후쿠오카형무소에서생을접었다.그토록갈망했던조국의독립과자유를목전에둔스무여덟꽃다운나이였다.1년이채되지않은옥살이에건강한젊은이가왜죽었을까.약물주입설등타살의의혹이짙지만명확한사인이밝혀지지않은게또다른안타까움이다.

그는죽어서도조국의품에안기지못했다.그가태어난만주땅에외롭게묻혔다.‘不逞鮮人’의주검은아무렇게나내던져지고아무렇게나묻혔지만,그마저도오랜세월동안그위치나행방도모른채방치돼있었다.‘序詩’를비롯한그의아름답고영롱한시들이시인에대한칭송과함께읽혀지고있었지만,정작시인의무덤이발견된것은1984년이다.시만좋아했지그의거취에는거의무관심했던것이다.

68주년에즈음한광복의날에전해지는윤동주시인에관한또다른우울한소식이있다.그가나고자란만주의생가에관한것이다.그의생가는중국엔벤(延邊)조선족자치주룽징(龍井)시밍둥촌(明東村)에있다.그생가가중국정부에의해새롭게정비됐다.우리돈9억여원의적잖은예산에4개월여간의공사로작년8월에완공됐다고하는데,그게새삼우리의관심을끄는것은생가의모습과시인의정체성이다.

정비전까지만해도‘윤동주고향집’이라는팻말하나만덩그러니서있던조촐하고소박한옛집과주변이크게변했다.흙길이었던생가앞터와진입로가대리석으로말끔히포장됐다.생가에는그전에없던시멘트벽과문이생겼고,시인의생가임을알리는가로4m,세로2m의큰경계석도건립됐다.그리고생가주변곳곳에중국어로번역된윤동주의시비들이있다.

거슬리는것은경계석의글이다.윤동주시인을‘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표기한것이다.옛만주용정,그러니까지금의옌볜조선족자치주룽징이그의출생지이고,그곳이중국땅이기때문에그렇게표기할수있겠다싶어도,흡사그가중국국적이라는느낌을은연중에나타내고있는표기이기에그렇다.중국조선족의국적은중국이다.중국으로서는그들이돈을들여정비한생가이기에생색을내고싶었을것이다.그렇다고시인의국적이바꿔질리는없다.하지만누구보다나라와민족을사랑한조선의민족시인윤동주앞에그런타이틀단다는것은시인을욕되게하는것이다.그런생가와함께그가묻힌엔지의무덤은잡초만무성한채풀밭속에방치돼있다시피하고진입로는흙길로비만오면뻘밭이돼근접하기가어렵다고한다.

시인은짧은연륜이었지만순수하고치열한삶을살다갔다.그러나일제하암담한현실은시인을무력하게했다.그런자신을빗대“인생은살기어렵고오히려시가쉽게쓰여지는것이부끄럽다”고토로했던시인이다.시인은죽어서도머나먼이국땅에서온전한안식을누리지못하고있지않을까싶어참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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