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漢山城
“임금은남한산성에있다(上在南漢山城).”

1636년병자년에청나라오랑캐들이조선을침략하여일으킨병자호란당시‘仁祖實錄’에있던첫머리말이다.인조임금은한양도성을포기하고남한산성으로피신해저항한다.그러나말이저항이지싸움다운싸움한번하지못한채아무런대책없이자기들끼리지지고볶고말싸움만벌이다제풀에지쳐항복한다.

인조는남한산성에서걸어나와청태종에게항복의식의소위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치르기위해송파의한강변인삼전도에서9번이나머리를맨땅에조아린다.왕이항복해버린상황에서들짐승처럼내동댕이쳐진백성들이겪은고통은치욕을넘어비극이다.인조를남한산성으로몰아넣은청나라는지금의잠실벌판에진을치고포로를잡아들이기위해광분한다.그때50만명이포로로잡혀끌려간다.한겨울에음식이나난방도없이집단수용된상황에서이들은얼어죽거나굶어죽는사람이부지기수였다는기록이있다.이런의미에서남한산성은항복으로인한왕권의상실과그로인한백성들의참담한고초가스며있는굴종과치욕,그리고피와눈물의현장이다.이런치욕과비극의47일간의상황은김훈의소설‘남한산성’에서잘그려지고있다.

이남한산성이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등재됐다.반가운소식이다.서울에서가까운남한산성이이런치욕의역사적사실을지닌문화재(사적제57호)라는사실은다들잘알고있지만,그와함께유원지적인이미지가함께하고있다는것또한사실이다.남한산성과그인근은서울사람들의야유회장소나등산객들이찾는명소로서도잘알려져있을뿐더러몸보신하는먹거리류를파는식당이즐비한곳으로도유명한곳이다.문화재가그역사성과함께또한유명한행락지로여겨지고있는데서남한산성이갖는묘한아이러니가느껴진다.

유네스코는남한산성의세계문화유산등재와관련해남한산성의역사적,그리고건축적의미를강조하고있다.솔직히우리가잘몰랐던사실이다.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는남한산성이“특정기간과문화권내건축이나기술발전,도시계획등에서인류가치의중요한교류증거”가되고“인류역사의중요단계를보여주는건물.건축.기술의총체,경관유형의탁월한사례”등으로세계유산조건을충족시켰다고했다.

좀더구체적으로는“중국과일본의축성법의영향이남아있어동아시아산성.건축술교류의증거일뿐아니라7-19세기유적이골고루발견돼축성기술발달단계를잘보여주고있다”는것이다.또17세기초비상임시수도로서의기능을하고,서양식무기에대응한다양한군사방어기술을집대성한점도높이평가됐다.남한산성은이와함께조선시대방어전략으로군사적기능과행정기능을산성에결합하는‘산성거주론’이실현된곳이다.병자호란이전에인조는성내부로백성의정착을장려해4000명이상이거주토록한데서비롯돼현재까지주민들이거주하고있는‘살아있는유산’으로서의가치도또한인정받았다.

남한산성이이렇듯유네스코가인정해주는세계문화유산이기에모두들반기고있지만,한편으로남한산성이378년전청나라의침략으로무참하게짓밟힌슬프고굴욕과치욕의역사로점철된현장이기에그의미는좀복합적인것으로다가온다.

남한산성이지니고있는이런역사적무게는결코만만치않은것이다.여기에더해진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등재는남한산성의역사를통해우리가견지해야할안목과의지를다지는계기로도삼아야할것이라는지적이나온다.세계문화유산등재로남한산성은세계적명소로서의위상이확보됐지만,그에더해남한산성과병자호란을통해현재적의미를되새겨보는계기로도삼아야한다는지적이다.병자호란이요동치던17세기동북아정세의산물이었던만큼중국의G2부상과그에맞선미국.일본의연합사이에서처신이어려운작금의한국이병자호란의역사적교훈을오늘에되살려반면교사로삼아야한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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