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간밤에뭔가를건넨다.등산용물컵이다.실리콘으로만든접이식물컵인데,왜한밤에그걸꺼내주는가.그뜻을잘안다.결혼35주년조용히넘어갑시다.뭐그런거아니겠는가.나는무엇을해줄것인가.근년엔소고기국으로때웠다.대파,양파,무를성성썰어넣고부드러운고사리와부추도넣어끓인소고기국.마누라는맛나게먹긴먹었는데,기실정확한표현은맛나게먹는모습을보였을것이다.그저께우족을좀장만했다.그걸로족탕을끓였다.푹고아진뜨거운국물의족탕이다.마누라가별로좋아하지않는다는걸알면서그걸끓였으니,이얼마나이기적인짓인가.그래도마누라는맛있게먹는모습을보여줄것이다.35년을그렇게살아온것은거의’기적’에가깝다.앞으로얼마나일지는모르겠으나,그또한이렇게살아가기를바란다.
그날은몹씨추웠다.눈도많이내려길이고뭐고깡깡얼어붙은날,새벽에머리를‘빨았다’작취미성상태에서차가운물에머리를담그고나니비로소정신이들었다.1호선전철을타고부천서광화문까지.지금은헐어없어진,시청뒷편의’프레스센터’1980년1월12.결혼날이다.식장에도착해도술이깨질않는다.어떻게식이진행됐는지모르겠다.한가지생각은또렷했다.’해치우고말자’10.26때김재규가한말이다.12.12사태가나고암울했던시절이다.나는그때판문점남북대화요원으로선발된상태였고.그러나나라의앞날도,나의앞날도그런시국상황에연계돼어떻게될지모를시절이었다.그러니결혼이고뭐고덤덤했다.결혼을그런식으로했다.아니’해치운’것이다.새벽5시에찬물에’빤’머리가온전할리있겠는가.머리털이도시죽을줄모르고부풀어올라있다.그런몰골로기념촬영을했다.첫날밤,설악산노루목의모산장이생각난다.냉골방이었다.숙취에얼마나떨었던가.그리고강릉.어떻게축의금봉투한묶음이내양복주머니에들어있었다.그걸로전복을원없이먹었던기억.그게35년전내결혼의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