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이래저래나의청춘과중년시절,방랑처의한곳이었다.대학시절어줍지않은짓으로하숙집에들어갈처지가못될때는피신처가되기도했고,어쩌다그곳에서만나는친구.선배와시국논쟁을벌이다청계천물로담근,카바이드냄새풀풀나는이른바‘특주’를뒤집어쓸정도로마시고는숨어들듯어두운거리를헤매던곳이다.
한참일할나이에부러지는直言(직언)으로일자리를잃고도찾아들었던곳이청계천이다.먹고살기위한호구책의방랑이다.신문사에있다나왔으니딱히할만한일이만만치않았다.설혹비슷한일자리가어른거렸어도다시는그짓을하고싶지가않았다.좀얽매이지말고자유롭게살자.어찌그리이기적일수있을까.중.고등학교에다니는고만고만한자식들과아내를생각했어야했다.그러나나는고삐풀린망아지처럼내하고싶은대로했다.그後果(후과)는아직도진행형이지만그래도싸다는생각이다.
그무렵청계천을들락거린것은고물상,시쳇말로‘나까마’일을해볼까하는생각때문이었다.8가에황학동벼룩시장이있었다.그무렵그시장에서나는또다른세상을본다.좀고상하게서양말로얘기하면‘앤틱(antique)일’이지만,남들이쓴물건을구해다잘손질해다시팔아이익을남기는일이다.사고파는일이었지만,수만가지의중고물품에서느껴지는체취나흔적을느끼고더듬는다는게재미나고가슴을설레게하는일이었다.
그곳에서오래그일을한사람들과의교유가우선중요했다.물건에대한정보와보는안목을익혀야했기때문이다.한두어달들락거리면서친분을좀쌓는다.그때알게된사람들이차영철,김종남,그리고황씨아저씨다.또한친구가있다.김용수일것이다.이름께나날린어떤가수의동생이었는데,당시황학동에서규모가크고폼나는앤틱가계를갖고있었다.동.서양골동품으로지어진듯한고색창연한분위기의그곳에서함께들둘러앉아술을마시다집에못들어가는일도왕왕있었다.어쩌다집에들어갈때에는숨어들듯가야했다.아내눈에는이상하게보일수밖에없는고물을싸들고들어가기때문이다.
그렇게하면서한육개월정도그짓을한다.그곳사람들과도친해져매일봐야서로들직성이풀릴정도가됐다.그러나거기까지다.나는그곳에서우연히라이카(Leica)카메라를만나면서빈티지카메라쪽을파고들게되고,이를계기로황학동시장보다는인터넷을통한이베이(eBay)에매달리게되면서그곳과는점차멀어지게된다.이베이를통해확보한카메라를황학동시장에가서파는수도생겨났지만점차황학동나가는경우가줄어들게된것이다.의리없는사람.그런나를바라보는그사람들의시선도그리좋지는않았을것이다.그러면서차차그곳과그곳사람들을잊어먹게된것이다.그게대략1998년말무렵이다.
얼마전문득황학동시장이생각났고그곳에한번가고싶은충동이일었다.그곳이그동안많이변했다는소식은더러접했다.황학동시장이란명칭은없어지고다른이름으로바뀌었다는것인데,‘동묘시장’이바로그곳이다.며칠전날을잡아나가봤다.이름은‘동묘시장’이었지만,살펴보니기실은옛황학동시장그대로였다.청계천이水路(수로)로변하면서지형상의변화는조금있었지만,옛날그황학동시장은그대로있었고,다만東廟(동묘)쪽으로시장이확대된상태였다.그러니까옛황학동시장거리는기존의가계들이그대로있었고,다만길거리좌판이동묘쪽거리로이동돼상설장이들어서고있는형태였다.
황학동시장거리는옛기억을그리되살릴필요도없이옛모습그대로였다.하지만거리는그대로인데사람들이없었다.그시절,평일이고공휴일이고관계없이많은사람들로넘쳐나던그거리가아니다.각종잡동사니를산처럼쌓아놓고고래고래흥을섞어가며호사가들을불러세우던‘나까마’들의그장단은어디로사라져버렸는가.
시장안쪽에‘고려사’라는가계가있었다.황씨아저씨가주인이었다.오래된사진기나영사기,그리고부품을사고팔던가계였는데,컴컴한내실에마주앉아소주를나누곤했다.가계입구에커다랗게적어놓은‘고려사’간판은옛그대로다.반가운마음에황씨아저씨가계실것같아입구를찾아보는데,뭔가폐점상태의느낌이다.문은굳게닫혔고거리쪽에내놓은진열장도포장으로둘둘감아놓아,한눈에도장사를하지않고있다는게대번에느껴진다.
맞은편잡화파는아저씨얼굴이눈에익었다.예전에본얼굴이다.‘고려사’에관해물었더니,폐업한것은아니고그냥문을닫아놓고있는날이많다는얘기다.황씨아저씨에관해물었더니비로소내가기억되는모양이다.그냥그렇다는것인데,연세도많이드니아픈데도많다는것이다.거리를걸어나오는데,어떤건물에숨겨지듯걸려있는간판이눈에띈다.‘바이킹.’‘바이킹’이면옛날김용수가하던가계이름이아닌가.간판의서체나디자인도옛날것과비슷하다.좁은계단사이에있는가계문앞에서서성거리다한번들어가볼까하는마음에문을열려고하니잠겨있다.‘바이킹’도개점휴업상태인것이다.말잘하고술잘먹고노래잘부르던김용수가거기에있었고만났으면얼마나좋았을까.김종남이가하던골목의가계는흔적도없다.나와동갑인뚱보차영철이가하던카메라점포도그렇다.이들은모두어디로가서어떻게살고있을까.
옛황학동시장은먹거리도좋았다.돼지껍질과곱창등을파는포장마차가저녁무렵이면불야성을이루곤했다.꼭저녁이아니어도포장마차는항시있었다.장사로재미를좀본날이면시도때도없이같이들앉아소주잔을기울이곤하다판을키우곤했다.지금은포장마차들이한두어군데있기는있지만예전같지는않았다.대신길한편에곱창집들이여럿들어서서는대낮인데도호객을한다.
세월이가면옛것은사라지고추억만남기마련이다.추억을남기는대신변화가들어선다.황학동이라고피해갈수있겠는가.세상돌아가는형편에따라변화와발전이있을것이지만,그래도좀아쉽다.예전의그곳과그곳사람들이그립다.그사람들이그시장바닥을떠나있지않기를바라본다.그곳에아직있다면,어쩌면어느날거기서만나게될날도있을것이다.그때를기다려보는수밖에없다.나에게황학동시장은이제추억으로만남아간다.추억을더듬어가는’감상의행로(sentimentaljourney)’로그기억을더듬는다.그시절김용수가술이취해하던말이곁에서다시소근거리듯들려오는듯하다.“형,여기는밤이되면매콤한매연이어둠과함께안개처럼퍼지면서흡사블루스불빛에젖는것같아.포장마차불빛들도그렇고.안그래?그러니떠날수가없어.”그때,내가맞장구를쳤을것이다.그래맞다.황학동블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