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간다하면대개천왕봉을가는것이다.하물며종주에나선마당에야두말할나위없이천왕봉은산행의으뜸이면서처음이자마지막이다.먼저오를것인가,나중에오를것인가의순서가문제다.먼저오르려면들머리를중산리로잡는게좋다.천왕봉을오르는최단거리의기점이기때문이다.우리들은중산리를기점으로잡고,법계사에서일박한후오르기로했다.
일행은모두12명.25회선배다섯분과29회6명,그리고다들알고지내는지인한분이다.선배들과는지난해에이어두번째지리산종주산행이다.산행,특히장거리산행에있어공유한경험은중요한것이다.선배들은그연세에도불구하고적극적이었고,그적극성을체력이뒷받침하리라는것을잘안다.
산행을시작하는중산리상두류동은오랜만이고감회가깊은곳이다.이곳은지리산산신령으로불리는우천허만수선생의흔적이깃든곳이다.1949년33살의나이로홀로지리산에들어와세석평전에움막을짓고지리산을가꾸는한편으로조난당한수많은사람들을구하는일을하다60세가되던1979년지리산어디에선가홀연히흔적도없이사라져버린분이다.이분을기리는비석이이곳에있었다.그런데오랜만에오니그비석이없다.그대신눈에들어오는것은인명구조헬기를운전하다순직한구조대원을기리는위령비한기다.예전부터있었던것같은데나로서는처음본다.
상두류동에서법계사까지는한3km남짓이고첫날산행의종착지이니홀가분하다.초여름의문턱이지만,지리산의숲과나무는시원한바람을날리고있었다.싱그러운숲,완만한산길을도란도란얘기를나누면서오른다.시간에구애를받지않으니여유롭고그여유속에서여러얘기들이나온다.한선배는나무등식물에정통한것같다.이나무,저나무,이풀,저풀을가리키면서이름을댄다.함박꽃나무,병꽃나무도그중에있다.
이런자유로움과여유는법계사에서까지도이어진다.잠자리는편백나무로지어진요사채이고밥은절밥이다.저녁예불을챙기는일행도있다.저녁공양을일찍한게탓이다.무료한저녁시간을때우기위해결국술이나왔고,선.후배간술판이벌어진다.나처럼우둔한사람이이런자리에서술을많이마신다.다음날산행뒷감당은어찌할것인가.
법계사의이른새벽,비가내리고있었다.지리산산행에서비는흔하다.그러니크게신경쓸일은아니다.이른아침공양을한후오른다.대부분비옷을입었다.몇몇은우산이다.편한대로하면된다.비는가랑비정도지만,그렇다고맞고갈비는아니다.선배들은역시체력이좋다.선두는선배들이다.후미에한선배가있었는데,비오는지리산을느긋하게즐기려후미를자임한것같다.
천왕봉까지2km.모두들잘오른다.천왕샘부근에서안개가짙어지고비바람이강해진다.이쯤이면천왕봉의일기가어떨것인가를짐작케한다.그러나막상도달한천왕봉은예상외로일기가나쁘지않았다.비바람도그닥세지않았고,안개도눈앞을충분히헤아릴정도다.무엇보다사람이없이한산한게신기할정도다천왕봉비석을배경으로사진찍기에도여유롭고좋았다.먼저도착한일행은이미장터목으로떠난후라,우리들후미일행은있을만큼그곳에머물렀다.천왕봉을꽤올랐지만,이런경험은처음이다.변화무상.그래서역시천왕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