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종주길에비를맞는것은흔한일이다.비가오고안오고를가늠한다는자체가무의미하다.
1,500미터가넘는산군을품은하늘의기운을인간의잣대로가늠질하는게이상하지않은가.
그저비가오면맞고,안오면안맞고오르내리며걷는길이지리산이다.
비는새벽부터뿌려지고있었고천왕봉을오른후장터목,
새석평전을거쳐벽소령으로가는지리산산길은비와구름의천지다.
벽소령은지리산능선종주길의중간쯤에위치한탓에하루를묵어가기에적합한곳이다.
하동화개면과함양마천면을이어주는이고개의이름이’벽소(碧宵)’라는게
참낭만적이면서지리산에걸맞다.
푸른밤이라는뜻의이말은달(月)이함께해야하고그에서연유한다.
겹겹이쌓인산위하늘로떠오른달빛이희다못해푸른빛을띤다는‘벽소명(明)월’이그것인데,
‘벽소한(寒)월’이라고도하며,벽소를푸른하늘의뜻으로풀이하기도한다.
벽소령의달이그렇다.그래서지리산의열가지명경(明景)가운데네번째가’벽소령의달’이다.
그러나벽소령의달을흔하게볼수있는것은아니다.천왕봉의일출보는것에견줄바는아니지만
변화무쌍한일기때문에보기가어렵다.일기예보따위는통하지않는다.
그저운에맡기는게상책이다.
천왕봉을오른후장터목과세석평전을거쳤다.이제는하루를묵어갈벽소령까지다.
비에젖은옷과질척이는신발로벽소령으로향하지만그래도우리들은내심밤이면
비가그쳐벽소령의달을볼수있을것이라는기대감이자리잡고있었다.
하지만벽소령에도달하기까지비는그치지않았고,그상태로벽소령의밤은초여름의
비속에젖고있었으니달에대한기대는일치감치접었다.
다음날신새벽.날은화창하게개어있었다.이미마음벽소령의달은생각속에서날라가버렸고,
마음은노고단까지가는종주길에쏠리면서바빠진다.
모두들차비를하고대피소를나선다.연하천으로향하는초입의푸른숲길로들어서려는데,
웬지이마가간질거린다.뭔가가하늘에서당기고있는느낌이다.하늘을보았다.
멀리보이는형제봉위푸른하늘에뭔가떠있다.달이다.지리산높은청공(靑空),
푸른하늘에뜬하얗고예쁜달이우리를내려다보고있었다.
밤에뜨는벽소령의달로’벽소명월’로삼아야겠지만,그것이반드시밤에뜨는달이어야
한다는법은없다.언제든벽소령에뜬달이면벽소령의달이아니겠는가.
지리산은밤에못보여준달을이른아침에우리들에게내어주었다.
지리산의넉넉한마음이아니겠는가.
지리산은전날온비로더욱화창한푸름을빛내고있었고,
우리들은다시그속으로텀벙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