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만든 김밥

팔불출 같은 얘기 하나 해 보자. 아내는 음식을 잘 하는 편이다. 잘 한다는 것은 맛도 있지만, 후딱 잘 만들어 치운다는 뜻도 있다. 내 생각이다. 단 조건이 붙는다. 마음이 동해야 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일 나가고 집안 일 하느라 물론 시간이 없는 것도, 내가 먹고 싶어하는 먹 거리를 만들어 달라고 ‘염치’ 없이 닥달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그런 이유가 있다해도, 어떤 형태로든 하고잡아 하는 ‘動’한 마음이 있어야 움직이고 만든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어제 토요일, 나더러 아파트에 장 서면 싱싱한 계란 반판만 사 놓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김밥 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웬일인가 했더니, 나가 사는 작은 놈 갖다주겠다는 것이다. 아내가 싼 김밥 먹어본지도 꽤 됐다.

저녁 늦게까지 아내는 김밥 말 재료를 준비하느라 좀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후딱 말았다. 한 솥밥을 했는데, 밥이 모자란다고 웅얼댔지만, 언뜻 보니 십수어개 쯤이나 말았다. 가장 먼저 만 김밥은 내 차지다. 맛 있다. 김밥 재료는 항상 그 것들인데, 나이 탓인가 덜쩍지근한 맛이 좀 새롭고 좋았다. 간장과 조청에 졸인 어묵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내가 원하는 재료들로 잘 만들어주었다. 그 재료들이란 묵은 지와 잔 멸치다. 묵은 지는 그냥 빨아 죽죽 찢어 넣도록 했고, 멸치는 볶아서 넣도록 했다. 그렇게 말은 김밥은 썰지않고 그냥 그대로 먹는 걸 좋아했다. 그 거 서너 개 우직우직 먹고나면 하루가 풍성했다. 옛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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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갖다 줄 것을 따로 싸 놓고도 김밥은 풍성하다. 세 접시였는데, 그 중 하나는 김밥 꼬다리다. 김밥의 끄트머리 부분인데, 썰어놓은 김밥 중에서도 나는 그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아내의 김밥 맛은 다른 음식도 그렇지만 어머니 것을 많이 닮았다. 어릴 적 김밥은 대개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쩌다 한번 씩 먹는 ‘특식’ 같은 것이었다. 소풍 갈 때면 어머니의 김밥을 맛볼 수 있었다. 그 때 김밥을 썰던 어머니는 남겨지는 꼬다리를 내게 하나 씩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김밥 꼬다리에서는 어머니의 맛에 대한 추억이 묻어난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김밥 꼬다리에서는 아직도 그 때 그 맛이 난다. 아내도 그 걸 잘 안다. 예전 김밥을 썰면 그 곁에서 그 꼬다리 하나 씩 줏어먹던 나를 왜 모르겠는가.

아내도꼬다리를 좋아한다. 아내는 자기 먹을 것을 챙기고는 나머지 꼬다리를 쟁반에 따로 곱게 썰어 놓았다. 쟁반에 꽃이 피었다. 참 예쁘다. 먹기에 아까울 정도라고나 할까. 천천히 하나씩 먹어야지. 아내는 김밥 등을 후딱 챙겨 나갔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김밥이 오늘 나의 일용할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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