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서 인가, 입맛이 내가 생각해도 요상하다. 이것 때문에 아내와 ‘다툼’도 잦고 궁박도 받는다. 다툼이란 딴 게 아니다. 아내가 기껏 만들어 놓은 음식을 자꾸 변형시키기 때문인데, 아내는 그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젊었을 적에도 육류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 수록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들 한다. 기력과 연계시켜 하는 말들이다. 그런 소리들을 흘려들었는데, 근자에 와서는 예사로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몸이 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기도 적당히 먹으려 하는데, 이 게 도시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 술 마실 때 한 두어 점 집어 먹는 정도인데, 그러니 고기를 먹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내가 간혹 강원도 어디 한우 파는 곳 근처 지인 집에 가면서 고기 좀 사다줄까고 해도 대충 손사래를 친다. 그럴 때면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스지는 어때요? 그러면 입맛이 좀 동한다. 스지는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지도 물론 소고기의 한 부분이다. 도가니 비슷하지만, 그 것보다는 하품으로 친다고 하는데, 나도 정확하게 어떤 부위인지 잘 모른다. 스지가 입맛에 맞는 것은, 아마도 어릴 적 집안 제사를 지낼 때 탕국에 스지를 넣었기 때문에 입에 좀 익숙해서 그럴 것이지만, 그것과 별도로 나는 오돌도돌 씹혀지는 식감과 그 특유의 맛이 나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가끔씩은 정육점에서 스지만 사다 나혼자 먹기도 한다. 물론 술 안주로서이다.

당산동에 잘 가는 정육점이 있다. 좋은 스지를 팔기 때문이다. 한번 가면 좀 많이 산다. 그 걸 몇 토막을 내 냉동실에 넣어놓고 먹고 싶을 때 적당히 요리해 먹는다. 스지를 다듬고 요리를 하는 것은 아내와는 관계 없다. 아내도 물론 스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제사 때다. 그럴 때면 나에게 부탁을 하지만, 그 외에는 스지로 내가 뭘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스지는 푹 삶아 먹는다. 딱딱한 연골이나 심줄이 흐늘흐늘해질 때까지 삶는다. 푹 삶아진 그것을 먹는데 다른 것은 별로 필요치 않다. 소금만 있으면 된다. 물론 함께 먹는 게 있다. 마늘과 된장이다. 나에게는 이 게 집에서 술 한잔 하는데 최상의 안주다. 그렇게 먹고 마시다가 어느 정도 먹었다 하면, 스지와 육수에 소금과 된장을 적당히 넣는다. 그러면 스지탕이 된다.

스지 얘기가 좀 길어졌다. 아내와 자주 다투는 것은 대개 먹고 남은 스지탕 때문이다. 아내도 입이 있고 입맛이 있다. 아내는 스지탕은 먹지 않기에 별도로 다른 국이나 찌게를 끓여 먹는다. 문제는 그 국이나 찌게에 남은 스지탕을 썪어먹는 나의 입맛이고 이것 때문에 가끔씩 아내로부터 궁박을 받는다. 아내는 그걸 잡탕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잡탕이면 어떤가. 입맛에 맞으면 된다는 게 내 입장이지만, 아내는 아무리 입맛이라지만 먹는데도 어느 정도의 ‘품위’는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며칠 전에도 스지탕 남은 것을 이틀에 걸쳐 된장찌게와 미역국에 넣어 먹었다. 아내는 나의 이런 입맛 취향에 지쳤는지, 이번에는 별다른 궁박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먹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의 입맛 때문이다. 스지 뿐만 아니다. 어떤 때는 재료가 전혀 이질적인 찌게와 국을 섞어 먹기도 한다. 그러면 묘한 맛이 나는데 나는 그 맛이 좋다. 아내의 입맛이 나와 비슷하면 좋겠지만, 그 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입맛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생각해보면 결국 술이다. 말하자면 안주와 속풀이 용도로서의 먹거리가 나의 입맛이라는 얘기다. 아내도 그 걸 모를리 없다. 아내가 진즉부터 나의 술과 그것에서 연유한 입맛을 알고 있었기에 한 순간의 조그만 다툼과 궁박에 그칠 뿐이다. 안 그랬으면 쫓겨나도 몇번은 쫓겨났을 것이다. 암만.

Working Lunch: 1902

Dayton, Ohio, circa 1902. “Window in girls’ restaurant, National Cash Register.” Dry plate glass negative, Detroit Publishing Company. (from www.shor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