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마산 서원골 ‘洗耳灘’과 지리산 ‘洗耳巖’
고향 마산에는 서원골이 있다.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곳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두척산(무학산)에서 흘러내리는 교방천의 물줄기를 따라 생겨난 계곡으로, 마산과 마산 사람들에게는 옛날 부터 ‘허파’ 구실을 한 명소이다. 이곳에 ‘세이탄(洗耳灘)’이라는 여울이 있었다.
관해정 위 해운사 앞 너른 바위 인근에 있던 웅덩이인데, 거기에는 ‘세이탄’이라는 한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글씨가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 1980년대 말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계곡의 훼손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유실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어릴 적에는 ‘세이탄’이 신라말 정치에 염증을 느껴 전국을 돌아다니다 한 때 두척산에 은거하고 살았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세상의 번뇌와 망상을 잊고자 자주 들러 시원한 계곡물로 몸을 씼던 곳으로 얘기를 들었고, ‘세이탄’이라는 글씨도 고운 선생이 직접 쓰고 새겼다고 했다. 그러니 그곳은 고운 선생의 체취가 서린 곳이다.
세이탄2(마산 서원골의 ‘세이탄’ 추정 각자 형상)
언제부터인가 어떤 선배 한 분이 마산에 내려갈 적마다 ‘세이탄’으로 추정되는 그곳을 찾아 그 흔적이나마 찾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글자체로 보이는 형상을 찾아냈다. 나도 몇번 가서 그 흔적을 확인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형상일 뿐이지 그게 ‘세이탄’ 글자로 여기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서원곡 인근의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분들은 분명 그곳이 ‘세이탄’이라고 했고, 1980년대 초반 언젠가는 그 글씨를 탁본하는 것을 직접 본적이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 분들은 그곳이 고운 선생과 관련이 있는 ‘세이탄’이고 고운 선생이 직접 새긴 글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지리산에도 최치원 선생의 ‘세이탄’과 관련되는 곳과 글씨가 있다는 걸 우연히 어느 글에서 보았다. 이곳 블로그에 산과 등산에 관한 글을 게재하고 있는 어느 기자의 지난 해 11월 기사가 그것인데, 지라산 화개천을 따라 걷는 신흥-의신마을의 지리산 옛길의 초입, 그러니까 화개천 상류에 최치원 선생이 새긴 ‘세이암(洗耳巖)’이 있다는 것이다.
‘세이탄’이 아닌 ‘세이암’은 웅덩이가 아닌 수중 자연 암반으로, ‘세이암’이라고 새겨져 있다. 고운 선생이 ‘귀를 씼는 바위’로 명명해 직접 글을 새기고 ‘고운 선생’이라는 이름까지 닮으로써 후세사람들에게 자신의 발자취를 확인까지 해주고 있는 곳이다. 그곳과 관련해 최치원이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을 주유하던 중, 임금이 사신을 보내 국정을 논의하자는 말을 듣자 화개천에 귀를 씻으며 ‘세이암’ 세 글자를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016-05-15 11;04;13(하동 화개천 상류 수중 자연암반에 각자된 ‘세이암’)
그 기자는 그곳에 대해 “물소리가 세차다. 귀를 씻어버릴 만한 소리로 흐른다”고 쓰고 있다. 이 인근에는 고운 선생의 자취가 담긴 또 다른 게 있다. ‘세이암’ 옆에 우리나라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 된 푸조나무가 그것인데, 이 나무는 최치원 선생이 세상을 등지고 신선이 되고자하는 바람으로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짚고가던 지팡이를 꽂아놓고 간 게 되살아 나서 지금의 푸조나무가 됐다는 애기가 전한다.
지리산의 ‘새이암’으로 같은 뜻이 담긴 마산 서원곡이 ‘세이탄’이 최치원 선생에 의해 조성되고 그의 넋이 담긴 곳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조만간 지리산으로 최치원 선생을 만나러 갈 계획이다. 마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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