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몸과 마음과 따로 놀지 않는다
술을 많이 마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느 정도 마시는지 잘 가늠이 안 된다. 술 마실 적에는 잘 모른다. 그저 술을 시키고 마실 뿐이고, 취하면 취한대로 흐느적거릴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어떨 때 이런 경우가 있다. 내가 마셔댄 술의 양이 확 느껴지는 경우다. 한 병, 한 병 먹는 게 늘어나 그 병들이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는 경우다. 좀 역설적이지만, 그 걸 보는 순간 술이 확 깨는 수도 있다. 내가 저리도 많이 마셨는가 하면서 스스로 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또 마셔댄다.
근자에 마누라의 나의 술에 관한 핀잔이 많아지고 있다. 술 버릇이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을 지적하는 핀잔이다. 물론 그 속에는 나의 건강이라든가, 호주머니 사정 등에 관한 우려도 썪여있다. 이제는 나이도 들었고 웬만큼 마시기도 했잖은가. 술에 관한 생각이 좀 깊어지고 있다. 어떤 나름의 방책이 필요해졌다고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술 마시기 전에 아예 마실만큼의 술을 정해놓고 마셔보자. 그러면 마시는 양이나 취기에 어떤 영향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정해 놓은 술이 모두 마셔지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 그것은 결국 나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취기가 수반될 것이니 그 때 그 때 처한 상황에 따라 대처하자 하였다.
어제 중학교 동문들과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마련된 뒤풀이에서 그 짓을 해 보았다. 핑계를 댔다. 병원에서 의사가 그렇게하라고 했다. 그러니 너희들 보기에 좀 이상하겠지만 참아달라. 한 친구가 시비를 걸어온다. 그 무슨 짓인가. 너하고 술 한잔 하자고 작심하고 왔는데, 그럴려면 나 고마 집에 갈란다. 농담삼아 하는 얘기지만, 내가 느껴도 이상한데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는 오죽 그럴까. 하여튼 그렇게 해서 시작된 술판이었다. 처음 해보는 그 짓이라 마시는 중에도 분위기가 어째 좀 이상해져 갔다. 잔을 돌리지도 않았고 주는 잔도 받지 않았다. 소주 한 병을 내 것으로 시켜놓고 오로지 그 술로 자작해 마셨다.
그렇게 그렇게 해서 술판이 익어갔는데, 한 참을 그렇게 마시다 내 앞에 놓여있는 술병을 보니 어느 새 세 병이다. 그러니까 혼자서 세 병을 마셨다는 얘기다. 나는 소주 두 병이 나름 정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마지노선을 넘겨버린 것이다. 친구들도 그 때쯤에는 더 이상 나의 그 음주법을 씹지도 않고 있었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그 걸 보면서  좀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이쯤에서 그만 둔다면 친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고 술판도 깨진다. 이 걸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그 방법은 실패로 끝났다. 혼자서 세 병 마신 것을 확인한 후부터 그 룰을 스스로 깨 버린 것이다. 술잔을 돌리고 주는 술도 넙적 받아 마셨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마신 양이 세 병을 제하고도 많았을 것이다. 그기다 2차로 가서 맥주까지 마셨다. 결국 나의 그 방법은 친구들의 조소거리 안주로 전락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좀 말짱한 정신으로 생각해 보았다. 술 마시는 것에 어떤 방법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것 아닌가. 나 좋아서 마시는 술이다. 그런데 거기다 어떤 인위적인 룰을 갖다댄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이치 아니겠는가. 술이 몸과 마음과 따로 놀 수 없다. 결국 또 나의 허술한 논리로 그 방법을 스스로 반박하고 있었다. 결국 또 이렇게 돌아갔다. 술이 허락하는 한 마시고, 술이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원해도 술이 떠나갈 것이다. 그 때까지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한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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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paul6886

    2016년 5월 24일 at 8:39 오후

    저도 술을 꽤 좋아하지요.
    어제도 친구와 낮에 만나 둘이서 소주 세 병 마셨는데
    의외로 필름이 끊겼습니다.
    오늘 보니 신촌 마트에서 많이 사왔는데 기억이 없네요.
    술도 분위기 따라 취하는 정도가 다른가 봅니다.
    언젠가 선생과 한 번 대작을 했으면 합니다.
    제 욕심인가요?

  2. paul6886

    2016년 5월 24일 at 8:41 오후

    로그인 안 하고 들어왔더니 이름이 다르게 나오네요.
    제 이름은 ‘바위’입니다.

  3. koyang4283

    2016년 5월 25일 at 9:06 오전

    선생님과는 예전에 한번 뵌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연희동 사시지 않나요? 제가 혹여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 기회되면 한번 뵙지요. 새삼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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