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나그네

장파리에 리비교가 있다. 서부전선에서 당시 자유교와 함께 DMZ로 들어가는 통로다. 다리 입구 검문소 곁에 인솔하사가 차를 세운다. 나 혼자 타고 있었다. “자, 인제 여기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르니 사 막고 싶은 거 사 먹고, 전화 하고 싶은 데 전화 해라.” 검문소 조금 뒤 점방에서 사이다 한 병을 사 마셨다. “됐심니더.” 그렇게 해서 DMZ로 들어갔다.

연대 보충대 내무반에는 후송병이 대부분이다. 멀쩡한 놈은 나 하나였다. 저녁무렵 비가 내린다. 내무반 분위기는 침울했다. 점호시간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다들 웅크리고 조용히 앉아들 있다. 내무반장 하사가 분위기를 좀 띄우려고 해도 영 먹히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자 했다.
군대에 군가 빼놓고 뭐가 있겠는가.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군가가 먹힐리 없다. 내무반장 혼자 부르는 형국이었다. 머쓱해진 내무반장이 분위기를 바꾼다. “자유곡 시간이다 부르고 싶은 사람 불러라.”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갑자기 내무반장이 내 앞으로 왔다. 역시 내가 아무래도 좀 멀쩡하게 보였는가 보다. “야, 니 노래 한 곡 해라.”
내무반 한 쪽 구석에 기타가 있었다. “저 기타 좀 써도 됩니까.” 기타를 품에 안았다. 튜닝을 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몇 개월 만인가. 아,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이후 지나간 몇 주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빗소리는 점차 세져가고 있었다. 무슨 노래를 할 것인가를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비, 비 노래를 부르자. 그렇게 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당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내무반 사람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전히 나 혼자였다. 나는 명륜동 하숙방 이층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났다. 조용했다. 뭔가 정지된 분위기다. 내무반장은 내 맞은 편 침상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어디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이 울고 있었고 그 울음은 서서히 번져 나갔다.
43년 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 빗소리에 잠을 깼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니 문득 그 때가 생각났다. 그래서 올려보는 추억의 노래다.

 

2 Comments

  1. 바위

    2016년 5월 24일 at 11:20 오전

    젊은 시절 좋아했던 송창식이었지요.
    비 오시는 날 오전, 이 노랠 들으니 감회가 깊습니다.
    추억에 젖은 노래, 잘 듣고 갑니다.

  2. koyang4283

    2016년 5월 24일 at 2:20 오후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지요. 빗소리를 들으며 어둔 창밖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 노래 생각이 나서 끄적여 봤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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