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木나무에 꽃이 피는가

머리칼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흰머리 안쪽에서 검은 머리가 돋아나오고 있는 것이다. 귀밑머리 털에서 처음 그런 현상이 일어나더니 뒷머리 아래 부분에서도 그랬다. 마누라에게 얘기하고 보여줬더니, 마누라는 새로운 검은 머리칼이 아니라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전에 한 머리칼 염색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여겼다. 고목나무에 꽃이 필 리가 없다. 그런가 싶어 그냥 넘어가고 있었는데, 몇 날이 지나면서 보니 그 게 아니었다. 귀밑머리 쪽에서 검은 머리가 한눈에 보아도 확연할 정도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숱이 많은 편이다. 단골로 다니는 이발관 아저씨는 갈 때마다 과장을 좀 보태 말 한다. 이발사 생활 오십년에 이렇게 머리 숱 많은 사람 처음 본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버릇이 언제부터인가 생겼는데, 마누라는 그걸 되게 싫어한다. 그 풍성하고 검던 머리털도 나이가 들면서 백발로 변한지 오래 된다.
오십 나이에 접어들면서 거의 백발이 됐다. 염색을 한지는 한 몇 년 된다. 백발로 변하면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어디에 출근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백발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아무래도 사회생활의 차원에서도 좀 젊게 보이는 게 좋을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다. 그 세월이 한 사, 오년이다. 재작년 8월 직장을 그만 두고서도 염색은 계속 했다. 습관처럼 된 것이다.
그러다 염색을 그만 둔 게 올해 2월부터다. 그 전에 또 다른 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염색이 자연스레 이어졌지만, 거기를 그만 두고부터 염색을 끊은 것이다. 사실 염색은 귀찮다. 시간도 많이 든다. 처음 염색을 할 때는 이발관에서 했다. 이발관 염색을 할 때마다 나는 나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대한다. 머리털에 검은 색 염료를 칠한 다음 색을 베게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리라고 이발사가 갖춰주는 나의 모습이 참 기괴하고 우습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고 또 시간도 많이 걸렸기에 이발소 염색을 그만 두고 집에서 나 스스로 하기 시 작한 게 한 몇 달 됐다. 집에서 하는 염색도 귀찮기는 마찬가지다.
염색하면서 말리는 과정에서의 그 기괴한 나의 모습도 남들이 못 본다는 것이지 나의 눈에는 그대로 들어온다. 그래서 염색을 끊기로 했다. 한 두 어 달 됐다. 염색을 하지 않은 나의 머리 털은 좀 이상해졌다. 흰색과 검은색의 머리털 구분이 확연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펑크 족 처럼 머리에 무슨 치장을 한 모습이다. 염색의 머리가 사라지게 하려면 흰머리가 자라나 염색 머리를 대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다소 걸린다. 그러니 흰머리지만 다소 우스운 모양의 머리털로 지내야 했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는 처지에서 검은 머리칼이 돋아나는 듯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저께 북한산 산행 길에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내 머리 털을 뒤적여 보더니 맞다 했고 다른 친구들도 맞장구를 쳤다. 참 희한한 일 아닌가. 며칠 후 이발을 할 터인데, 그 때쯤이면 확인이 되고 결론이 날 것이지만 궁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몸에 일어나는 어떤 변화의 조짐일 수도 있겠으나, 당치도 않게 무슨 회춘 쪽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주제를 알아야지.
지난 몇 개월간 내 몸과 관련해 나는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것을 먹었던가를 생각해 봤다. 별달리 몸에 좋은 것을 먹은 기억은 없다. 홍삼을 좀 구입했는데, 그것은 아내를 위한 것으로 나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비타민제는 가끔씩 먹는다. 그밖에 또 뭐가 있을까. 하나가 생각났다. 생강이다.
예전부터 생강은 좋아했는데, 먹는 방법이 까다로워 마음에만 두고 있던 식품이다. 두 어 달 전 경동시장에 나가 길을 지나는데, 온갖 약재들을 분말로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생강이 눈에 들어왔다. 4백 그램에 이만 원이었다. 그것을 사다 꿀과 함께 물에 타 마셨다. 처음엔 좀 매워서 먹기에 거칠었지만, 계속 먹으니 그런대로 입에 익어 갔다. 맛도 좋았다. 그러니 요 몇 개월간 매일 먹는 밥 이외에 따로 챙겨 먹은 것은 생강이다. 그러면 검은 머리칼이 돋아나는 게 생강 때문이라는 것인가. 답은 반반일 것이다. 하지만 별도로 다른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나는 생강에 강한 신뢰감을 갖고 있다.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난리가 났다. 생강을 단체로 구입해 먹자는 것이다. 어느 친구는 별도로 전화까지 걸어왔다. 경동시장 어디쯤의 가게인가고 물었고, 다른 친구들은 경동시장 갈 날을 잡자고도 했다.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한 친구는 따로 진지한 내색을 띄며 물어본다. “그 거 머리털 안 빠지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겄제?” 이런 때 필요한 것은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하모. 묵어봐라. 고목에 꽃도 피우는데, 그깟 탈모 정도야 새 발의 피 아니겠냐. 암만.”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검은 머리칼이 어째서 이 나이에 새롭게 돋아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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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초아

    2016년 5월 26일 at 6:00 오전

    회춘 맞네요.
    축하드립니다.^^

  2. koyang4283

    2016년 5월 26일 at 6:44 오전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의 회춘이 더 중요하겠지요.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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