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林芳蔚)의 ‘추억’
명창 임방울(1904-1961)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산호주로 서울 기생이었다. 임방울은 산호주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소리공부를 소홀히 했는가 보다. 어느 날, 문득 이를 깨닫고 안 되겠다 생각하여 산에 들어갈 채비를 한다. 그리고는 산호주에게 목과 소리가 완성되기 전까지 찾지말라 하고 산호주를 떠난다.
깊은 산 절 곁에 토굴을 파고 들어앉아 소리공부를 하던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산호주가 찾아왔다 전한다. 하지만 임방울을 산호주 보기를 야멸차게 거절한다. 아직 소리가 안 되었으니 돌아가달라는 말만 전한다.
세월이 흘러 임방울이 소리공부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산호주를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죽은 몸이었다. 토굴로 찾아왔을 때 이미 죽을 병에 걸려있었고, 죽기 전에 임방울 한번 보고 죽으려 찾았는데, 못 본 것이고 그 게 마지막 이별이었다. 임방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겠는가.
그 심정을 담아 임방울이 직접 글을 쓰고 만든 단가가 바로 이 ‘추억’이다. 임방울의 나이 그 무렵 27, 8세인 1930년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30만장이 팔렸다니 엄청난 인기를 누린 곡이다.
임방울과 고향(광주 송정리)이 같은 소설가 한승원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 적 동네 사람 모두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 노래를 입에 달고 불렀다고 한다. 그 기억을 되살려 만든 소설이 ‘앞산도 첩첩하고’라는 작품이다. 한승원은 이번에 영국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 강의 아버지다.
이 노래를 개인적으로 처음 대한 게 1990년대 초다. 그 때 신나라 레코드사에서 임방울 노래를 복원시킨 CD를 제작한 것을 들었는데, ‘쑥대머리’ 등 임방울의 대표곡이 수록돼 있었지만, ‘추억’ 이 노래가 마음에 들어 많이 들었다. 오늘 우연히 유튜브 서핑을 하다 이 노래를 만났다. 이 단가의 하일라이트는 ‘보고지고, 보고지고’로 이어지는 뒤 중머리 부분인데 이게 빠져있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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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행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럇던가.
그리 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 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님을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난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 보리오.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전생에 무슨 함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야서 각도 각골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속에 들어도 나는 못잊겠네.
원명이 그뿐이었던가. 이리 급작시리 황천객이 되얏는가.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어데를 가고서 못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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