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非世說) 현충일이 새삼 遺憾스러운 이유

어릴 적 처음 맞은 현충일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 그 날이 어떤 날이라는 것은 배웠기에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희생을 기리고 얼을 추모하는 비감함은 어린 마음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더한 것은 공포감이었다. 그 때문에 현충일하면 그 날이 생각나는 것이다.

1950년대 말, 그 때는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었고, 또 있을지도 모를 침략에 대비한 방공훈련 등이 주기적으로 실시되곤 했다. 학교에 입학해 처음 맞는 그 해 현충일에 그 훈련이 있었다. 웽- 하는 사이렌 소리에 교실에서 전원 교사 뒤 뜰로 뛰쳐나가 귀와 눈을 손으로 감싼 채 땅바닥에 업드렸다. 공습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눈. 귀 막고 업드려있던 그 순간은 짤막하지만 영원히 갈 것 같은 공포의 시간이었다. 진짜로 북한군 비행기가 날라와 폭격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현충일을 말 그대로 현충일 답게 느낀 것은 군 생활 때다. 서부전선 최전방이었는데, 누구든 그 곳에 가면 애국자가 되는 곳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1970년대 초 그 당시만 해도 GOP에는 전몰한 군인들의 유류품들이 많이 눈에 띄곤 했다. 총알에 뚫려진 철모와 군화, 탄창, 반합, 그리고 심지어는 뼈만 남은 신체의 일부분 등도 쉽게 발견되고 하던 때다.

그 시절 어느 해 현충일에 즈음한 날. 중대OP에서 철책선을 따라 대대본부로 가는 길에, 노루 한 마리가 앞서가고 있었다. 호기심에 몰래 뒤를 따라가다 노루가 낌새를 느끼고 도망친 어느 수풀 울창한 지점이었다. 그곳에 녹슨 철모 하나가 흙속에서 반쯤 파묻힌 상태로 나와 있었다. 전날 내린 비 탓이었을 것이다. 근처 군데군데 흙속에는 다른 유류품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들을 세밀하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수습해 흙을 파 다시 묻었다. 그 앞에서 묵념과 경례를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비장한 기분이었다. 군 생활, 주어진 일을 나름 열심히 한 것은 그 비장감, 곧 현충일의 정신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현충일도 올해 61회 째다. 현충일에 대한 국민들의 느낌도 많이 변했다. 우리가 현충일을 매년 기리는 것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의 나라를 위한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본 받자는 것이다. 곧 나라를 우리의 힘과 정신으로 지켜내는 정신의 발로를 저마다 다지는 일이다. 안보적으로 우리가 열강에 둘러쌓인 동북아적 관점에서 처한 상황은 언제나 그랬듯 좋지 않다. 그 가운데 우선적인 위협은 북한으로부터의 것이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무력시위와 위장평화 공세는 북한이 우리에게 겨누고 있는 양면의 칼날이다. 이에 대처해 나가기 위한 정신자세 또한 현충일 정신에 스며들어 있다.

이 날을 맞아 우려되는 것은 이 현충일 정신이 차츰 희미해져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조짐은 지난 좌파정권 10년의 부산물이라고 단언한다. 이게 조짐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아 간다는 게 더욱 우려스럽다. 현충일이 공휴일이라 즐기고 노는 날로 인식돼가고 있는 게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조기를 단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이제는 잘 안 지켜진다. 올해 현충일 한 언론이 이와 관련해 한 특정지역을 지적한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 지역의 공공시설 116곳 가운데 40%가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충일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린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에 대한 묵념을 위한 것이다. 이번 현충일은 연휴가 겹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락삼아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서울 도심의 시가는 한산했다. 그 한산함 속에서 울려 퍼진 사이렌에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사이렌은 그 무관심에 그냥 묻혔다. 누가 말했다. 공원을 걷고 있을 때 사이렌이 울렸다. 그 사람은 멈춰서 묵념을 올렸다. 호기심에 살짝 눈을 떠 주변을 살펴보았다. 딱 자기 한 사람 홀로 공원 산책로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었다고 한다.

현충일은 국가기념일인 만큼 국가주도의 기념식이 매년 열린다. 올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박 대통령은 북한을 거론했다. “(북한이) 도발시에는 주저없이 단호하게 응질할 것”이라며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힘을 합쳐야만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했다. 현충일을 맞아 나라와 국민 모두의 현충일 정신 계승을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의 이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대통령과 국가기관과 국민이 함께여야 한다. 그러나 서로들 따로 놀고있지 않은가. 그러니 대통령의 이 말은 의례적이고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라와 국민의 이런 정신자세는 어떤 명분과 이유에서든 국가안보를 업신 여기는 안보불감증의 연장선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안보불감증을 중심으로 한 이런 정신적 해이상태는 비단 현충일을 맞이하는 정신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여러 방면에서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국가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천안함 폭침사건도 그렇다. 46명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은 그 실체가 드러났고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사건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사건의 실체을 둘러싼 부분별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군 내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군 내부에서 조차 천안함 폭침을 둘러싸고 천안함 희생자와 생존장병에 대한 시각이 이상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실체에 대한 무분별한 논란의 저의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가는 대강 짐작가는 바가 있지만, 우리 군에서 조차 이런 흐름에 부화뇌동하듯 하면서 희생자와 생존 장병에 대해 모독과 폄훼의 시각으로 보고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지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이렇다. 천암함 폭침사건은 북한 잠수함이 의도적으로 쏜 어뢰를 엉겁결에 맞고 침몰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군 내부에서는 국가의 공식적인 발표와는 별개로 천안함 폭침사건이 천안함 대원들의 안이한 태도에 기인한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이를 토대로 교육까지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천안함 생존자들은 일부 따돌림까지 받으며 스스로 수치스러워하게 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생존자인 정주현 중사는 이 때문에 작년 6월에 전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천안함 장병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과 장병들에 대한 도리가 결코 아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나라의 안보태세가 군데군데서 많이 허물어진 것은 두말 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군까지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는 결코 좌시될 사안이 아니다.

나라의 안보태세가 해이해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현충일은 그래서 유감이다. 너도 유감이고 나도 유감이고 모두들 유감이다. 현충일 정신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현충일 노래를 다시 한번 읋조려 본다.

“겨레와 나라위해/목숨을 바치니/ 그 정신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조국의 산하여/용사를 잠 재우소서/충혼은 영원히/ 겨레가슴에/님들은 불변하는/민족혼의 상징/날이 갈수록/아- 그 충성 새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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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김진우

    2016년 6월 8일 at 12:38 오전

    님의 글 늘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이 글 역시 100% 공감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2. koyang4283

    2016년 6월 8일 at 6:22 오전

    감사합니다

  3. 바위

    2016년 6월 8일 at 5:58 오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허물어진 데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요.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악물고 나라를 살렸는데
    그 분의 묘비를 훼손하는 인간까지 생겼으니
    박근혜 대통령도 정신 좀 차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괜한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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