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입니다. 당연히 사진을 통해서지요. 참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이병철 전 회장 탄생 100주년 때 였을 겁니다. 그 행사장에서 이 회장이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을 만나 손을 잡고는 울먹이며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 그들도 사람이었구나.
그 때까지 나는 이건희나 이명희 같은 재벌그룹 회장은 우리와는 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울 줄도 웃을 줄도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또 사람끼리의 정도 우리와 달라서 예컨대 형제, 자매가 있어도 없는 듯이 하면서 사는 줄 알았습니다. 돈이 많으니 그저 돈밖에 모르고, 오로지 돈 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었지요. 이회장과 그의 형 이맹희와의 불화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 그들이 서로 부둥켜 않고 울먹이고 있으니 신기하게 보이지 않을 수 밖에요. 그 둘 가운데 있는, 이 회장의 부인, 그러니까 이명희 회장의 올케되는 분의 표정도 사람의 그 것이었습니다. 여동생은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저 사람도 매니큐어를 하는 여자 사람이구나. 매니큐어가 더욱 빨갛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다시 무색해졌다는 것이지요. 이 회장 맏딸의 혼인과 이혼에 얽힌 얘기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딸의 이미지가 괜찮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삼성의 잘 짜여진 홍보에 너무 기댄 것 같습니다. 그 혼인과 이혼의 다른 일방의 얘기를 듣고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물론 한 때 삼성가 맏사위였던 그 일방의 주장도 검증을 받아야겠고 삼성측의 반론도 들어봐야겠지만, 일단 그 내용은 충격적이면서 삼성가 사람들의 몰인정과 몰인간성을 드러내고 있지않나 싶습니다.
그 사람의 주장 가운데 놀라운 것은 “결혼생활이 너무 괴로워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는 대목입니다. 삼성가의 맏사위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일 것인데, 그런 위치에 오른 사람을 자살로까지 유도케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지위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혼인은 많습니다. 그런 역경을 딛고 맺어진 부부는 감동을 줍니다. 그런 혼인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당연히 사랑이지요. 삼성가 맏딸과의 혼인의 시작도 처음엔 그랬을 것입니다. 사랑이 있었겠지요. 문제는 맺어진 그 다음입니다. 사람과 사랑을 곧이 곧대로 보지 않았다는 게 그 혼인의 비극이고, 그 중심에 결국 ‘제일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삼성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사람과 사랑 이전에 삼성은 그 사위를 삼성에 걸맞게 가꿔 놓는게 중요했을 겁니다. “삼성가 맏사위로 MIT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두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는 대목에서 그 게 읽혀집니다. 이런 과정에 사람과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들과의 정도 없습니다. 그저 그럴듯이 보여지는 겉치레로서의 부자간의 모습만 있었을 겁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희 회장님의 손자이기에, (나에겐) 아들이 어려웠다.”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이 회장과 삼성에 맞게 가꾸어져야 했을 겁니다. 그 사람의 이 말은 아버지로서 그런 자식을 바라다보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있는 절규입니다.이게 재벌 삼성가 사람들의 본심이 담겨진 면면이라면, 그들을 잘못 봐 왔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역시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무엇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2년 이상 병원에 누워있는 이 회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몇몇 측근들만 알고 있을 뿐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는 얘기지요. 다만 여러 나도는 얘기들로 짐작되는 것은 의식은 오락가락한다지만, 냉정하게 보아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삼성답습니다.
이 회장의 생사는 삼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한 요소일 겁니다. 이런 만큼 이 회장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 회장은 어쩌면 진짜로 울고있을지 모릅니다. 한 인간의 생과 사가 이런 상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고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슬프다는 말입니다. 모스크바 크레믈린 붉은 광장에 레닌이 있습니다. 몸은 방부제에 범벅이 된 채 회칠을 한 얼굴로 100년이 가깝게 관속에 누워 있습니다. 단지 보여지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건희 회장의 지금 처지에 왜 뜬금없이 레닌의 그런 모습이 겹쳐지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