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 아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지에 상관없다. 아무리 궁박한 형편에 있다 하더라도 자기 몸 다치는 것에는 실색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사형수가 형장으로 가면서 길바닥 삐져나온 돌쩌귀에 발을 헛딛어 중심을 잃고는 “아이구, 죽을 뻔 했다. 아파 죽겠다”고 했다는 우스개도 있지 않은가.
배가 이상했다. 왼쪽 하복부에 뭔가 쥐어짜는 느낌이다. 물론 엄청 아프다. 툭툭 묵직하게 찌르기도 하고 휘감기도 한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가라않지 않는다. 뭘까. 큰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 도적놈 자복하는 심정도 된다. 술을 그만큼 많이 마셔댔으니, 이쯤에서 탈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그에다 지난 몇년 간의 극심한 마음 고생. 그러니 올 것이 왔다하고 받아 들이자.
하지만 그리되기 쉬운가.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 간다. 저녁답에 들어온 마누라는 배라니까, 간과 위의 위치도 잘 구분 못한다. 보험 가입하면서 간 부위를 제외했던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왼쪽이니 위다. 걱정말거라. 두어마디 하는 순간 통증이 더 심해진다. 앉아 있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아프다. 아프고 불안하고 걱정스럽기는 해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갑작스레 심하게 아픈 것 치고 큰 병 없다. 그러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통증은 계속됐다. 그런데 그 통증을 감당해 맞이하면서 보니 좀 이상하다. 통증이 주기적인 것이다. 밀려왔다 사그라지고, 밀려왔다 사그라지고. 그 게 한번 씩 밀려올 때는 머리가 싸- 해지면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아프지만 밀려가면 말짱하다. 그 주기는 2-3분 간격이다. 극심한 통증 뒤의 말짱함은 오히려 시원스러움을 수반한다. 그러니 궁리가 생긴다. 짤막하지만 길게 느껴지는 그 통증에 어떻게 대처할까하는 궁리다. 똑바로 앉아 보자. 웅크린 자세로 누워보자. 편을 바꾸어가며 모서리로 누워보자.
주기적으로 오는 통증이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도 잤다. 2-3분짜리 토막잠이 가능하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그런 토막잠을 실제로 잔 줄은 모르겠다. 하지만 엎치락 뒤치락하면서도 순간 순간 꿈을 꿨다는 것은 그런 잠이나마 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신혼 때였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한창 몸 아낄 때다. 배가 아팠다. 친구가 대학병원에 있었다. 단박에 친구를 찾아갔다. 얘기를 듣더니 친구가 즉석에서 처방을 해 준다. 약국가서 이 거 달라고 해라. 토막 잠 속, 간간이 이어지면서 꾼 꿈에 배가 아팠고, 친구가 나왔고, 약이 나왔다.
새벽이라 몸도 그에 적응하느라 통증의 주기를 좀 푸짐하게 해 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잠간 눈을 붙인 것이다. 눈을 뜬 것은 역시 통증 때문이었다. 한 밤을 지나고나도 여전했다. 이제 어떻게해야 할까. 병원에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통증 속에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꿈 생각이 났다.
배가 아팠고, 친구를 찾아갔고, 친구가 약을 가르쳐줬고, 그리고 나았고… 그 건 꿈이 아니었다. 36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그 기억이 들면서 비로소 내가 감당하고 있는 복부 통증이 무엇이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햇수의 차이만 있을 뿐 똑 같은 증상이었다. 그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인데, 꿈에서 불러준 것이다.
통증은 좀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배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그 때 친구가 가르쳐준 그 약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다. 그 약을 먹고 바로 나았다. 그리고는 36년 동안 그 증상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그 약 이름이 생각 안 난다. 그 약을 기억해내 먹으면 된다. 그러면 나을 것이다. 그 약 이름이 무엇이었지, 지금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