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있었던 줄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름이 아니다. 북한의 金日成 숙부와 외삼촌에게 우리 정부가 건국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이다.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해 지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보훈처장이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그런 전례를 바탕으로 김일성 부모에게도 훈장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다음날 포상기준의 원칙적인 측면 운운하면서 이른 시일 내 서훈취소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얼버무렸지만, 보훈의 달, 나라를 위해 산화한 지하의 수호영령들이 들고 일어날 사건이 버젓이 대한민국 국회를 한 바탕 휘저은 것이다.
이 사안을 둘러싼 여론은 짐작했듯 극심한 양분이지만 서로들 부글부글 끓기는 마찬가지다. 보수 쪽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명백한 국기문란 행위라며 분개하고 있고, 진보좌파 진영 쪽에서는 해묵은 ‘연좌제(連坐制)’를 들먹거리며 서훈취소에 반대하고 있다.
따져보면 이 사안은 2005년 盧武鉉 정권이 발단이다. 그해 광복 60주년을 맞아 이른바 사회주의계열 독립 운동가들의 ‘공적’을 평가하고 이들에 대한 서훈을 결정한 게 그 계기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과 2011년 각각 김일성의 친삼촌 金亨權과 외삼촌인 康晋錫에게 보국훈장을 추서한 것이다. 그러니 욕을 먹고는 있지만, 보훈처로서도 변명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보훈처는 이 규정을 자의적으로 좀 확대해석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사실을 폭로한 그 야당의원에 따르면 당시 노무현 정권은 이런 방안을 마련하면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와 김일성 친. 인척 및 북한정권 참여 및 조력자에 대한 구분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말하자면 여운형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을 한 사람에게는 훈장을 주지만 김일성 친. 인척과 북한정권 참여자는 여기서 배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훈처에서 그냥 모든 사회주의계열 독립 운동가들을 구분하지 않고 추서했고, 그 후 이 정부 들어서까지도 쉬쉬하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기왕에 그렇게 마련된 규정을 그대로 지키면 된다.
이 규정대로라면 김형권과 강진석은 김일성의 친. 인척이기 때문에 훈장을 받을 수 없다. 서훈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들은 또한 세대는 다르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정권 유지를 위한 가계우상화 선전에 적극 이용되면서 북한정권의 조력자로 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김형권과 강진석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김일성의 숙부인 김형권(1905-1936)은 1930년 8월 함남 풍산군 파발리의 일본경찰 주재소를 일행과 함께 권총으로 습격해 일경 수사부장을 사살, 15년 선고를 받고 복역 중 옥사했다. 북한은 1990년 풍산군과 풍산읍을 각각 김형권군과 김형권읍으로 명명하는 한편, 평양 혁명열사능에 반신상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강진석(1890-1942)은 김일성의 모친 康盤石의 큰 오빠로 항일운동을 하다 1921년 체포돼 8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병사했다.
이 둘 모두 康盤石, 金亨稷(김일성의 父)과 함께 이른바 김일성 革命家系(혁명가계)의 일원으로 김일성우상화와 북한정권 합리화에 적극 이용되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康敦煜(강반석의 부)과 康良煜(강반석의 재종부), 그리고 김일성의 첫 부인인 金貞淑도 이용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의 동상과 반신상이 북한 곳곳에 세워져있고 이들 이름으로 명명된 행정구역과 교육기관도 있다.
2012년 3월 오스트리아에 있는 히틀러 부모의 무덤이 철거됐다. 히틀러를 숭배하고 나치즘의 부활을 꿈꾸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순례를 막기 위한 조치다. 히틀러의 부모는 각각 1903년, 1907년 히틀러가 십대 때 사망한, 히틀러의 나치독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스트리아가 오랜 세월이 지난, 이들 히틀러 부모의 안식처인 무덤을 철거키로 한 것은 ‘인류의 적’인 히틀러를 추종하는 해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연좌제라고 시비하는 여론은 없다. 애꿎게 당한 히틀러 부모로서는 자식 잘못 둔 탓이다.
김일성이 대한민국의 반국가단체 수괴로서 우리 민족에게 끼친 해악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좌파진영으로부터 김일성에 대한 별 해괴한 평가가 나오고있는 것은 새삼 우려할 일이다. 이번 사태의 와중에 한 좌파성향의 언론은 김일성에 대해 “지난 날 정통성 없는 친일독재정권들이 교육과 언론을 통해 그를 ‘가짜’라고 터무니 없이 왜곡하고 폄하했을 뿐이다”며 “그(김일성)는 결코 ‘분단의 원흉’이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다.
김일성의 이들 친. 외삼촌에 대한 서훈취소는 뒤늦은 조치나마 정당한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흐름을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들 김일성 일가를 대한민국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나라의 정체성 및 안전에 대한 해악을 여러 각도에서 제거하고 방지하는 차원에서 타당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반증이다. 좌파진영이 이들에 대해 “어쨌든 독립운동가 출신”이라며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포괄적으로 반인류범죄에 대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소아병적 시각이다. 이런 징벌적, 그리고 경각심 차원의 조치를 불순한 정치적 의도의 연좌제와 결부시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journeyman
2016년 7월 6일 at 3:28 오후
저도 이 뉴스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가릴 건 가려야 하는데 말이죠.
koyang4283
2016년 7월 7일 at 12:24 오후
그저께 김정은이 미국에 의해 ‘반인권범죄자’로 규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조치는 미국에 앞서 우리 정부가 해야할 일 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념의 전쟁 중에 있습니다. 흐름으로 보아 종북세력이 좀 우세하다는 생각마저도 듭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