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非世說) JTBC ‘사드’ 오역(誤譯) 보도를 보며

번역은 어렵다. 타국의 언어와 문자를 모국어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이 작업은, 단순히 단어나 말만 바꾸는 게 아니다. 단어와 구절에 담긴 개념을 파악하고 응축해 표현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것을 바탕으로 다시 쓰는 글이 번역이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번역이 그만큼 어려우니까 번역이 잘못된 오역(誤譯)이 나오게 마련이다.

오역은 그 사안과 내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것이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오역으로 인해 더러는 인류에 큰 재앙을 안겨주기도 하고 민감한 사안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미국의 원자폭탄은 태평양전쟁을 종식시킨 계기로 평가되지만, 25만 명이라는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인류사 최대의 비극으로 꼽혀지는데, 트루만 대통령의 이 원폭 투하 결정이 오역 보도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일본 정부의 ‘모쿠사츠(默殺)’이라는 단어를 일본의 한 언론이 잘못 번역해 보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촉구한 미국 등 연합국 정부에 대한 당시 일본 내각의 반응은 “모쿠사츠를 견지한다”는 것이었다. ‘모쿠사츠’는 ‘무시한다(ignore)’와 ‘언급하지 않는다(no comment)’ 두 가지 뜻이 내포돼 있는, 일본 사람들 만이 이해하는 좀 모호한 단어다. 퍠전이 목전에 있는 만큼 일본으로서는 내심 항복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잠시 시간을 벌기위해 그런 반응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를 일본의 한 언론이 ‘ignore’ 쪽으로 오역을 해 보도했고, 이를 본 트루만 대통령이 사흘 후 원폭 투하를 결정한 것이다. 물론 이 오역이 원폭 투하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없잖아 있으나 어쨌든 원폭 투하 전개과정의 인과관계에 있어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2008년 우리나라의 광우병 파동 당시 사태를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간 것도 우리 정부의 오역이 빌미가 됐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협상과 관련,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다, 국민에게 설명하는 문답자료를 만들면서 미국 식품의약청의 관보를 오역해 발표한 것이다. 즉 “30개월 미만이 아니거나 뇌와 척수를 제거한 소가 아니라면(unless), 도축 검사를 받지 않아 식용으로 쓰일 수 없는 소는 동물사료로 금지된다”는 내용의 ‘unless(-가 아니라면)’를 ‘even though(-할지라도)’로 오역함으로써 “30개월 미만 소도 사료 사용을 금지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 오역된  내용이 MBC 등 방송을 타고 나가 국민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전국적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조선일보 사진)

(조선일보 사진)

지금 대한민국은 사드의 주한미군 편성과 배치를 둘러싸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격한 논쟁 속에 들끓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국에 역시 또 한 종편방송의 오역을 바탕으로 한 보도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지난 광우병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다. JTBC의, 괌 사드 부대을 르포 형식으로 취재한 미 ‘성조지’를 인용한 보도가 그것인데, 이 방송은 여기서 명백한 오역 보도를 했다. 문제의 내용은 성조지 영문기사 일부 내용을 발췌해 “발전기의 굉음이 작은 마을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라는 해석과, 성조지와 인터뷰를 한 사드 운영 요원의 말을 인용, “이 지역에 살 수있는 것은 두 마리 돼지 뿐이다. 사드 포대 근처에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전한 게 그것이다. 이 보도대로라면 사드의 굉음이 굉장하며 인체에 아주 유해하다는 결론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진보좌파 쪽을 두둔한 셈이다.

(조선일보 사진)

(조선일보 사진)

하지만 이는 JTBC가 정정보도를 했듯 명백한 오역이었다. 성조지 원문을 일일이 여기에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영어를 어느 정도 독해하는 사람이라면, 한 눈으로도 성조지의 원문을 이해했을 것이다. ‘두 마리 돼지’도 그렇고 ‘발전기의 굉음’도 완전히 딴 판으로 오역한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사드 포대 근처에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성조지 어디에도 이런 내용의 인터뷰는 없다. 결국 오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갖다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JTBC의 이 보도가 나온 게 지난 13일이다. 이 보도로 인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이 급등했고, 급기야는 군사기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위해와 안정성 체크를 바탕으로 여론의 진화를 위해 성주군에 있는 주한미군의 레이다 기지, 그리고 괌의 미 사드 부대가 한국 언론에 공개됐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새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JTBC의 보도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역을 바탕으로 한 명백한 오보다. 오역 보도는 대개 실수에서 비롯되지만, 어떤 의도에 의해 작의적으로 생기는 것도 더러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경우 ‘모쿠사츠’라는 단어의 오역이지만, 굳이 그 의미를 ‘무시한다’ 쪽으로 몰아가 보도한 것은, 어쩌면 일본의 결사항전을 바라는 국수주의 언론의 의도가 개입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JTBC의 이번 경우는 단어에 대한 의미 파악이 잘못된 오역 보도가 아니라는 점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JTBC의 경우는 단어가 아닌 문장 자체를 완전히 딴 판으로 잘못 번역해 보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JTBC가 나흘이나 지나 정정 및 사과방송을 한 것도, 오역 보도에 어떤 의도된 맥이 있다면 그에 연상되어지는 대목이다. 그 방송의 보도를 책임지고 있는 손석희 사장은 미국의 유수대학에서 저널리즘 석사를 한 사람이다. 그러니 영어도 잘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치졸한 오역 보도가 나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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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하게 생겨난다. 정치. 경제. 사회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도 많다. 작고한 이윤기 선생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19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에 첫 번역해 소개한 분이다. 이 분은 그 책을 낸 후 몇년이 지나 그 책을 재번역 해 낸다. 번역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자신의 오역을 고백하고 새롭게 작업을 한 결과물이다. 그 몇년 사이 그는 미국에 가서 라틴어 등을 공부해 그 언어들을 바탕으로 다시 번역했다. 그래서인지 그 책은 그 후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이 읽혀졌다. 번역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오역을 인정하는 용기가 제 이의 창작인 번역을 훨씬 윤기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윤기 선생을 통해서 본다.

오역은 하늘의 말씀이라는 성경에도 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명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구절은 성경에 나오는 글인데, 이 구절에 나오는 낙타(gamla)는 밧줄(gamta)의 오역이라는 것이다. 오역이지만, 하늘의 말씀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니 인류는 수천년 간 그대로 믿고 따랐다. 성경의 이 오역은 인류의 낙타를 보는 시각에 분명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낙타로서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2 Comments

  1. 김진우

    2016년 7월 19일 at 9:30 오후

    JTBC의 성조지 인용 ‘사드’ 보도는 오역이 아니라 왜곡입니다.
    원문에도 없는 문장을 넣은 것이나
    애매한 단어가 없음에도 그럴듯하게 번역을 하는 것은
    분명히 의도적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손석희는 과거 광우병 파동 때나 세월호 사건 때 역시 그랬습니다.
    그 처럼 똑똑한 사람이 판단이 흐려서가 아니라
    그래야 골수 좌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씨에 대하여
    조선일보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negative로 나왔습니다.
    그 때 조선일보의 박국희 기자가 김씨의 성조지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면서
    ‘언제는 미국을 조국이라 하더니 이제는 한국을 조국이라 한다’는 비난을 하였습니다.

    박기자는 김씨가 말한 My country를 조국이라 번역을 한 것입니다.
    기자 정도라면 조국이 Fatherland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그런 기사를 내는 것 역시 의도적인 왜곡입니다.

    나 역시 내 나라는 미국이고 내 조국은 대한민국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늘 건강 하세요.

    • koyang4283

      2016년 7월 20일 at 5:29 오전

      공감합니다. 따뜻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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