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非世說) ‘짬밥’에서 ‘군대리아’까지

‘짬밥’이라는 말, 요새도 쓰는 줄 모르겠다. 군대서 (군인들이) 먹는 밥을 일컫는 속어인데, 먹다 남긴 밥이라는 잔반(殘飯)에서 나온 말이다. 먹다 남은 밥이 왜 군인들이 먹는 밥인가. 아마도 그 밥이 워낙 부실해 비꼬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하기야 예전 ‘짬밥’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돼지 짭밥’이란 말도 있듯, 돼지에게 먹이는 수준 쯤으로 형편 없던 게 ‘짬밥’이었다.

산 꼭대기 OP에 중대본부가 있었다. 거기 군인들 ‘짬밥’은 아래서 길어 먹었다. 힘 좀 쓰는 신병을 매 끼니 때 산 아래소대에 보내 지게로 밥을 가져오게 해 먹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고참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짬밥’이 갑자기 부실해졌다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부식으로 들어있어야 할 육고기의 양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소대 취사병을 의심했지만 그들은 ‘육군 정량’대로 조리해 올려 보낸다고 했다. ‘짬밥’ 길어나르는 신병에게 의혹의 시선이 몰렸다. 지게를 지고 오다 혼자서 고기를 골라먹지 않았냐는 것. 급기야 실사까지 나선다. OP 올라오는 중간 지점 큰 나무 아래서 닯뼈, 돼지뼈가 발견됐다. 신병이 이실직고 했다. 배가 너무 고파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기만 골라 먹었다는 것이다. 한 번만, 한 번만 하다 계속 그렇게 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 얘기다.

어렵던 그 시절은 누구든 배가 고팠다. 하물며 무쇠라도 소화시킬 나이의 장정들이야 고달픈 군 생활 속에서 오죽했을까. 나라도 어렵고 식량사정도 안 좋았다. 그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북대치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나라는 최소한이라도 잘 먹이려고 했다. ‘육군 정량’이란 바로 그런 최소한의 기준의 ‘짬밥’의 수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육군 정량’의 ‘짬밥’마저를 도둑질해 먹으려는 작자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 빼 먹는’ 격이다. 이런 부정은 부대 단위를 막론하고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를 불문하고 자행됐다. 주로 인사계나 주임상사들이 주식과 부식을 담당하는 ‘1종계’ 사병을 끼고 주. 부식을 빼돌리는 못된작태였다.

대대에서 웅변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원고도 중요하니 중대본부에서 글 좀 쓰고 목소리 좋은 한 사병을 골라 나가라고 했다. 그 사병은 시키는대로 준비와 연습을 해 대회에서 3등을 했다. 3등을 한 것은 원고내용이 좋았다고 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때 웅변대회를 개최한 목적은 당시 서울을 지키는 어떤 높은 부대, 계급 높은 장군의 독직사건과 관련해 군 내 부정행위를 근절하기 기강 확립 차원의 것이었다. 이 사건은 물론 그 후 권력다툼의 정치적인 모함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사병은 원고에서 부대 내 ‘1종계’에 얽힌 부정행위를 시사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내부고발’인 셈인데, 부대 내 부실한 ‘짬밥’의 원인을 그들의 부정행위와 연계시킨 것이다. 그는 3등을 했지만, 한 동안 곤란을 겪었다. ‘1종계’ 고참사병과 선임하사가 불려가고 하는 와중이었다. 그 후 ‘짬밥’이 질과 양적에서 좀 나아졌다. 역시 1970년대 초반의 얘기다. 어려운 시절엔 어려운 ‘짬밥’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짬밥’이기도 하다.

오늘 이 ‘짬밥’과 관련한 보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요즘 군대에서는 군인들의 먹거리가 다양한 모양인 것으로 들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군대리아’라는, 시중의 특정 패스트푸드 상표를 딴 군 급식용 ‘빵식’도 있으니 말이다. 한 달에 여섯번 나오는 이 ‘빵식’에는 다양한 버거가 나온다고 한다. 보도인즉슨 이 빵식에 나오는 새우버거가 병사들의 인기 메뉴였는데, 이 버거의 패티가 새우보다는 명태의 함량이 많아부실해졌고 이에따라 병사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 또한 내부고발에 의한 것을 용케도 한 언론매체가다루고 있다. 예전 군대로 치면 예컨대 그 때 잘 나오던 ‘도루묵 국’이 있었는데, 그 국에 도루묵 알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지적하는 고발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 때는 질보다 양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새우버거에 명태가 많이 썪인 패티면 어떤가. 양만 많으면 최고다며 가리지않고 먹었을 것이다. ‘짬밥’도 국가와 시대의 변화를 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라가 그만큼 살만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떤 매체에서는 또 한. 중. 일 동양 3국의 군대급식, 즉 ‘짬밥’을 비교한 사진을마침 게재하고 있는데,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모르겠지만, 보기에 우리나라의 것이 최고로 좋아 보인다. 대한민국 ‘짬밥’ 만세라도 불러야 할까.

 

(조선일보 사진)

(조선일보 사진)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