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총장 취임식
흔히들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한다. 지성이라면 뭔가 좀 딱딱하고 무겁다. 그 대학을 대표하는 자리가 바로 총장이니, 그 자리 또한 높고 근엄하다. 그 총장자리에 누군가 새로 앉게되는 의식의 모임, 그러니까 취임식은 어떤 선입관을 준다. 근엄하고 딱딱할 것이라는 것. 막중한 총장 자리에 앉아 학교를 꾸려갈 계획과 의지를 밝히고 참석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자리가 총장 취임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총장 취임식을 생전 처음 봤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총장 취임식이니 ‘생전’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겠다. 신이 나고 흥이 돋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파격적인 취임식이었다. 지난 1일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있은 총장 취임식이다. 이번에 취임한 한석정 총장은 나의 고향 후배다. 몇몇 선배들과 함께 참석했다.
파격의 조짐은 총장이 대학교기를 인수 받을 때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기를 인수받아 흔들 때 뭔가 한 마디를 외쳤는데, 그 때 표정이 아주 익살스러웠다. 그 표정을 보고 별안간 걱정이 왔다. 저 신임 총장이 뭔가 ‘사고’를 칠 것 같다는 것. 총장은 그러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그의 지난 인생의 경력 등이 드라마틱한 것도 그렇고, 파격적인 성격이 또한 그렇다. 서울대학을 두 세번 입. 퇴학을 거듭한 것도 그렇고 권투선수 생활을 한, 그러니까 우리나라 유일의 ‘대학교수 복수’라는 경력으로도 그러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취임사도 그랬다. 군더더기가 없다. 학교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그에 따른 실천계획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학교 구조조정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은 그들에게 충분한 위로로 느껴졌을 것이다. ‘사고’를 칠 것이라는 우려는 취임사 말미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총장도 이제 60을 넘긴 나이 아닌가. 그러나 총장 개인의 ‘사고’가 아닐 뿐 행사의 파격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한석정 총장 취임식 축사 동영상)
이어진 각계 인사들의 축사가 또한 그랬다. 단상에 올라 언변으로 하는 축사가 아니다. 영상으로 처리된 축사다. 국내. 외 삐까뻔쩍한 인사들의 그것들을 들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더구나 총장과 고교 동기인 문 머시기 등 유명 정치인들도 와 있지 않은가. 그들이 필시 올라 와 폼 잡고 한마디 할 줄 알랐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영상 축사 속의 인사들은 모두가 수긍할 만한 분들이었다. 그들보다 훨씬 비중이 많게 높게 시선과 귀를 모은 사람들이 영상 속에 있었다. 학교의 경비원. 청소원. 총무과 직원 등이다. 그들의 소박한 축사와 당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탄성이 나왔다. 낮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총장의 낮은 자세가 그대로 읽혀지고 있었다.
(Saint-Saens, Cello Concerto No. 1 – 첼리스트 이명진 교수 연주)
이날의 취임식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울림과 감동으로 남는 것은 취임식 내용으로도 그랬지만, 달리 한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영상축사 바로 뒤 이어진 축하공연이다. 이 또한 취임식 소개 팜플렛을 처음 봤을 때 그저 겉치레의, 형식적인 공연이려니 하는 선입감이 있었다. 그러나 축하공연은 그렇지 않았다. 이즈음 본 음악 공연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아름답고 수준높은 공연이었다.
동아대학교 오케스트라와 그 학교 음대 교수들로 짜여진 공연이다. 물론 그들을 잘 모르는 처지라 그 수준을 가늠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새로 부임한 총장을 진심으로 아끼고 정서적인 차원에서 힘을 보태려는 노력이 공연 속에 배여있었다. 바리톤 박대용의 비제 오페라 칼멘 중의 ‘투우사의 노래’, 첼리스트 이명진 교수의 헝가리안 랩소디 68번(데이빗 포퍼), 소프라노 김현숙 교수의 ‘섬머 타임(거슈인)’ 등 단촐한 공연이었지만, 어느 공연보다 열정적이었고 수준 또한 높았다. 한 공연 씩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취임식이라는 전제가 없었다면 아마 몇 차례의 앵콜이 이어졌을 것이다. 누가 뭐라든 나는 이미 그들의 팬이 됐다. 그만큼 가슴에 와 닿은 감동의 공연이었다는 얘기다.
취임식이 끝나고 행사장 밖에서 한 총장과 만났다. 의례적인 말 외에 특별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왔다.
“한 총장, 욕 좀 보거라.”
한 총장이 그 말을 받았다.
“예, 욕 좀 봐야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