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국 한 그릇

더위에 완전 녹초가 됐다. 게다가 낮술까지 한 잔 걸쳤다. 이게 더위와 상충작용을 한 탓인지 집으로 오는 길이 완전 뻘과 늪길이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아침에 나오면서 아내가 한 당부가 생각나 집 가까이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오이를 샀다. 간 김에 우무가사리 등 이것 저것을 샀다. 짐이 세 보따리다. 그걸 들고 집으로 오는데 메시지가 들어온다. 우체국이다. 택배가 경비실에 있다는 것. 경비실에 들러 그것을 찾으니 네 보따리 짐이다. 집까지 한 100여 미터쯤 될까. 집으로 오면서 그 길에 드러 누울 뿐 했다. 더위에 지치고 낮술에 취하고 짐 보따리에 부대꼈다.

택배는 김포에 사는 중학교 동창친구의 아내가 보낸 것이다. 뭘까. 기대했던대로 바로 장어국이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택배 상자를 바로 뜯은 것은, 그 국을 빨리 먹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걸 먹어야 기운이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친구 아내가 장어국을 보내온 데는 저간의 사연이 있다.

재작년인가. 그 장어국을 먹었다. 그것도 우리 중학교 재경 동기생 몇십 명을 모아다 끓여준 것이다. 양수리에 친구가 하는 갤러리 겸 카페 마당에 솥을 걸었다. 집에서 장만한 장어와 각종 채소, 양념, 심지어는 그릇과 수저까지를 챙겨다 그 곳에서 장어국 판을 벌인 것이다. 그 때 난리가 났다. 장어국 맛 때문이다. 물론 장어국만 먹었겠는가. 그 전에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고, 그 판이 파할 무렵 장어국이 나온 것인데, 그 맛이 기가 막혔던 것이다. 보양의 장어국이었지만, 그만한 해장국이 또 없을 것이다. 그날 이후 동창 모임때마다 그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지난 월초에 연락이 왔다. 친구 생일이 그 즈음인데, 장어국을 끓여 양수리그 갤러리에서 친구들을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운 날씨에 그 많은 인원들을 먹이기가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또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번거로운 일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논의 끝에 모여서 먹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는 것. 대신 끓인 장어국을 보내 주겠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택배상자에는 잘 포장된 장어국과 함께 김치 한 가지가 있었다. 김치는 장어국에 궁합이 맞고 앙상블의 맛을 낸다는 산초김치다. 우리 경상도 바닷가 지방에서 끓여먹는 장어국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게 산초다. 그 산초로 김치를 담가 장어국과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산초가 장어에 잘 어울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물론 산초 양념을 참 좋아하지만, 산초를 양념으로 한 김치는 처음 보고 처음 맛 본다.

친구 아내는 진해 분이다. 진해에 언니가 계시는데, 그 언니가 보내주는 멸치젓갈과 산초, 그리고 방아로 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방아는 마산과 그 인근 지역, 그리고 전라도 몇 지역 사람들만 즐겨 먹는 독특한 향미의 채소다. 이탈리아 음식에 빠질 수 없는 바질과 같은 허브 채소로 보면 된다. 방아는 전국 어디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 방아도 해풍을 맞고 자란 게 그 향이 더 진하고 강하다고 한다. 진해서 보내주는 방아 등 그 재료들을 집에서 직접 말린 태양초 고추가루와 함께 버무린 게 그 산초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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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사람인 친구 아내가 끓이는 장어국도 물론 진해식이다. 진해는 마산 바로 곁이라 음식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어국은 좀 다르다. 마산에서 끓여먹는 장어국은 우선 보기에 발갛다. 고추장 등 붉고 맵은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진해 장어국은 그렇지 않다. 국물이 발갛지도 않고 맵지도 않다. 물론 맵쌉한 맛은 있다. 청양고추를 넣기 때문이다. 비주얼한 측면에서 마산 것과 좀 다르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질감을 좀 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맛에는 완전 압도됐다. 마산 것도 물론 맛있다. 마산 것은 뭐랄까, 고추장을 넗고 끓인 개장국 맛과 비슷하다. 내가 처음 개고기를 넣은 개장국을 먹은 것도, 그게 장어국이라는 말에 속아 먹었듯이 언듯 보아 구분이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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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장어국은 우선 고소한 게 맛의 특징이고 특장이다. 장어의 고소한 맛이 진하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은 고추장 등 강한 양념의 맛을 배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소함을 좀 넑은 의미의 표현으로 구수함이라고 하자. 진해 장어국은 한 마디로 구수한 장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진국이다.

진해 장어국은 바다장어 중에서도 붕장어를 쓴다. 붕장어는 흔히들 ‘아나고’라는 말로 회로 썰어먹는 그 장어다. 붕장어는 그 맛이 고소하기로는 장어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아나고 회로 먹어도 경상도 사투리로 “꼬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어다. 그 붕장어를 푹 삶아 머리와 뼈를 발라내고 씨레기와 콩나물, 양파를 넣고 푹 끓인 게 진해 장어국이다. 양념은 빻은 마늘과 청양고추, 조선간장이다. 조선간장은 물론 맨 마지막 간을 보면서 넣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바로 방아다. 방아도 그 특유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마지막에 넣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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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된 장어국을 냄비에 넣고 푹 끓였다. 땀에 절은 몸이지만 씻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다. 한 그릇 안 먹고는 다른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첫 숫갈이 중요하다. 어느 국이든, 그 첫 숫갈에서 그 국의 맛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못해 몇 숫갈을 먹어도 그 맛을 헤아지리 못한다면 그 국은 먹으나마나한 것이다. 장어국 한 숫갈. 그 맛은 구수함의 절정이다. 깊이가 있는 구수함이다. 그 구수함에서 토실토실한 붕장어 한 마리의 진한 기운이 서서이 내 입안을 감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구수함에 더해 방아의 독특한 향미는 식욕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따뜻한 밥을 그래서 장어국과 함께 먹어야 한다. 아삭아삭 씹히는 씨레기와 대가리 뗀 콩나물의 식감도 좋다. 처음 먹어보는 산초김치는 맵쌉하면서도 산초 특유의 자극적인 향이 어우러져 뭔가 이색적인 김치의 맛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장어국에는 산초김치가 제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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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국 먹는 내내 땀이 흐르고 흘렀다. 속이 편안해 졌다. 몸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8월 13일 at 5:47 오후

    저도 한그릇 주세요.
    침넘어 갑니다.
    산초김치는 우리고향 경주에서도
    해먹어요. 물론 시댁인 북면 온천마을에서도
    해먹더라구요.
    시어머님은 추어탕을 잘 끓이셨지요.

    먹고 싶어서 침깨나 흘리며 글을 읽었습니다. ㅎ

  2. koyang4283

    2016년 8월 14일 at 6:36 오전

    곁에 계시다면 한 그릇 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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