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소설, 그 片鱗의 기억들

읽었던 문학작품에서 유난히 머리 속에 남아있는 대목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더러는 감동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고 혹은 충격적인 표현이라서 지워지지 않고 기억되는 대목들이다. 고교시절에 일본 소설을 좀 읽었다. 그 무렵이 1960년도 중반 경이라, 당시의 일본 문학은 태평양전쟁 후로 상징되는, 그러니까 이른바 전후문학의 거센 영향 아래 몇몇 중견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고있던 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이시하라 신타로 등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다자이 오사무는 그 때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전후 일본의 니힐리즘을 다룬 ‘斜陽’을 쓴 작가로,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도 좋았지만, 수필도 좋았다. ‘코스모스, 無慘’이라는 대목이 생각난다. 전쟁이 지나간 황량한 가을의 풍경을 적은 수필에 나오는 글귀다.

이들 일본 소설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에 이런 것이 있다. 좋아하는 여자를 품에 넣기위한 욕망의 도구로 자신의 ‘성기’를 이용하는 대목이었다. 장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는 자신의 발기한 성기를 방 장지(壯紙)문을 뚫어 디미는 것이었다. 그 소설은 음란적인 내용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전제를 깔고 읽어갔기에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없었다. 하도 그 부분이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것이라 그 대목을 그대로 베껴 학교에 가 친구에게 읽어준 기억이 있다.

이 대목을 나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이제하 선생이다. 나는 선생이 그 대목을 기억해 어떤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심경이 좀 복잡해졌다. 우선 반가웠다. 흡사 먼 기억 속에서 나를 끄집어 내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또 이 더운 염천에 그 대목을 끄집어내 빙빙 휘젖고 있는데서 문득 어떤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선생의, 그 대목을 인용한 그 글은 내 기억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게 해 준 측면도 있다. 나는 그 대목이 미시마 유키오의 ‘新聞紙’라는 단편소설에 있을 것으로 여태껏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엉뚱한 사단으로 이어지는 ‘신문지’의 내용이 ‘성기’를 들이대 미는 그 충격적이고 좀 엉뚱한 그 대목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완전히 어긋났다. 그 대목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에 나오는 것이었다. 선생도 물론 그렇게 적고 있지만, 나는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 그래서 바로 잡아드리리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서재를 뒤진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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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이 책 무더기 속에서 나왔다. ‘일본전후문제작품집.’ 고교 일학년 때 본 이 책에 그 대목이 담겨져 있는 소설이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이 계절’이다. 한번 옮겨 보자.

“… 에이꼬 씨,

방안의 에이꼬가 이쪽으로 향한 인기척을 짐작한 그는 발기한 음경으로 장지를 뚫고 쓱 디밀었다. 장지 종이는 건조한 소리를 내고 뚫어졌으며, 그것을 본 레이꼬는 읽고있던 책을 힘껏 그 장지에 내던졌던 것이다. 책은 신기하게 관혁을 맞추고 다다미 위에 떨여졌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쓰야는 결국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그가 바란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길게 쓰지 않겠다. 에이꼬가 그 질펀한 욕망의 장을 주도했다는 얘기다. 이 또한 여태껏 내가 담아왔던 내용과 사뭇 다르다. 고교시절 읽었을 때는 분명 에이꼬가 그런 여자가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어이 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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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목을 확인하려 꺼내 본 책이다. 하지만 기왕에 꺼내본 책, 다시 한번 들춰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쏫아나는 한편으로 내 기억과 틀린 부분이 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아꾸다까와 상을 수상한 작품인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이 틀린 기억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평생 아꾸다까와 상을 염원하며 소설을 써 왔기에 당연히 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작용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아꾸다가와 상을 받질 못했다. 반면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은 1955년 아꾸다까와 수상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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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이름도 잘못 알고 있었다. 극우 민족주의인 일본 장교의 ‘하라키리(切腹)’를 그린 소설의 제목을 ‘割腹’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憂國’이었다는 것. 그것도 모르고 몇년 전인가, 일본인의 ‘하라키리’를 내 블로그에 소개하면서 미시마 유키오의 그 소설을 ‘할복’이란 제목으로 소개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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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어진 김에 이 책도 좀 소개를 하자. ‘일본전후문제작품집,’ 이 책은 단기 4293년, 그러니까 1960년 신구문화사에서 펴낸 전집이다. 이 책 말고고 독일의 전후문학을 다룬 ‘독일전후문제작품집’ 등도 있었다. 이 책을 구입할 때는 전집이었는데, 어째 찾고보니 일본 것 하나만 남았다. 어디 또 뒤져보면 독일 것도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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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우리 문단을 빛내던 여럿 분의 이름이 나온다. 이 전집의 편집인이 백 철, 안수길, 최정희다. 그리고 번역자는 모두 여덟명인데, 대표 번역자가 소설가 계용묵이다. 번역자로는 이밖에 선우휘, 정한숙, 오상원, 안수길, 최정희, 김동립, 신동문 등이다.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 속의 쟁쟁한 문학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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