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非世說) 이 한 장의 사진

한 장의 사진이 갖는 예측성이랄까, 어떤 사진에서 불길한 미래가 점쳐지는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정권 몰락의 단초가 집혀지던 1979년 10월 18일 유력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진 한 장이 기억난다.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그 전날은 박정희 정권 유신독재를 태동시킨 이른바 ’10월 유신’ 선포 7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막정희 대통령이 배설하는 기념만찬이 열렸다. 시기적으로 그 무렵은 유신독재의 반민주성과 패악성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한층 고조되고 있던 시기로, 그 만찬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어불성설이었다. 만찬이 열리고 있던 그 때 부산에서는 5만여 명 이상의 부산시민들이 ‘유신독재 철폐’를 외치며 연 이틀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파출소와 언론기관, 세무서, 도청 등이 습격을 받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만찬은 여흥이 뒤따랐다. 가수 위키리가 사회를 봤고 현 인, 백설희, 김정구 등 유명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만찬장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칭송의 무대였다. 유신독재를 떠 받들던 공화당과 유정희 의원들 간에 노래자랑이 있었다. 몇몇들이 노래를 부른 후 당시 유정회 대변이이었던 정재호가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박 대통령에 대한 헌사를 낭송한다.

“조국근대화를 향한 각하의 뜨거운 눈동자 가장자리에는 항상 눈물이 괴어 있습니다. 눈물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이렇게 풍만한 인정과 뜨거운 집념의 영도자를 받들어 모신다는 것은 나의 행복입니다. 우리 오늘 유신 7주년을 맞아 신명을 다 바쳐 일할 것을 함께 다짐합시다.”

장내에는 박수가 흘렀고 건배가 이어졌다. 정재호는 몇곡의 노래를 한다.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묘했다. 나훈아의 ‘바보같은 사나이’였다.

노래자랑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중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박 대통령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뭣들 하고 있어!” 이 말 한마디다. 박 대통령은 만찬 중에도 부산 사태에 대한 보고를 매 시간 듣고 있었다. 그 때는 부산 사태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었고, 그런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반응으로 만찬장은 일순 얼어 붙었고 서둘러 끝이 났다.

그 때의 만찬장 사진은 여럿 있다. 그 중 한 장의 사진이 이틑 날 신문에 실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어 공동으로 배포한 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이 사진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아부성의 헌사를 바친 정재호가 대통령 곁에서 뭔가 말을 하고 있는 사진이다. 들어보나 마나 또 다른 아부성 발언으로 대통령의 심기를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나는 18일 아침, 신문에 실린 이 사진을 보고 유신 독재정권의 확실한 종말이 느껴졌다. 그 후에 듣기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감을 느꼈다고 했다. 청와대 만찬이 끝난 직후 유신정권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시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선포 직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민심의 동태를 살피고자 부산에 온다.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시위는 마산으로 흘렀다. 20일 0시를 기해 마산에도 계엄령이 선포된다. 박 대통령이 충복인 김재규에게 시해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9일 후다. 유신 독재정권의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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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 1면에 게재된 사진 한 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말도 많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청장에 임명된 이철성으로부터 악수 인사를 받고있는 장면이다. 우병우는 이철성의 인사검증을 한 장본인이다. 우병우는 검증과정에서 이철성이 경감시절 낸 음주운전 사고를 비롯해 사실 은폐 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검증을 밀어부쳐 결국 임명에까지 이르게 했다.

우병우 곁이 대통령 마당발 같은 냄새를 풍기는 김재원 정무수석, 그리고 그 옆이 조선.해운 부실구조조정을 주도한 이른바 ‘서별관회의 3인방’ 중의 한 명인 안종범 경제수석이다. 나라는 아직도 우병우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래도 ‘소 귀에 경 읽기’ 격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도 나라가 찢어지고 있다. 북한의 SLBM 성공으로 나라의 안보 문제는 더욱 긴박해졌다. 박 대통령은 그런데도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병우 문제 때문에 이런 국가적 중대사안이 묻혀져가고 있는 분위기다. 우병우가 대체 어떤 인물이기로 그다지 끼고 도는지 국민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별 이야기가 나돈다. 대통령이 우병우에게 뭔가 약점이 잡혀서 그럴 것이라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기도 한다.

이철성의 인사를 받는 우병우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숙여 인사하는 이철성과는 대조적이다. 우병우도 웃고있고 김재원이도 안종범이도 여유롭게 웃고 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여러 사안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도로 박근혜 사람들의 진면목이 어느 정도 읽혀진다. 이런 뉴스의 장본인도 박근혜 사람이다. 바로 대통령이 그렇게도 챙기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다. 장관으로서, 또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서 그 여자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던가.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그 여자를 줄창 챙기고 있다. 그 여자의 일년 생활비가 5억을 넘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 대부분 접는 분위기다. 오늘 이 사진 한 장으로 언젠가 어떤 불길한 예감이 가시화됐다는 글을 다시 안 썼으면 한다.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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