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유두열의 추억
1984년 10월의 그날은 한글날이었다. 가을바람 솔솔한 그날 모든 사람들의 이목은 잠실운동장에 쏠렸다. 프로야구 3년차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이 열린 날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일찌감치 가 자리를 잡았다. 레프트 외야석.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는 대단했었지만, 그 날의 경기는 그 때 서울에 있던 부산과 경남 출신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삼성과 롯데가 맞붙어 7차전 마지막까지 온 것이다. 관중은 확 갈렸다. 대구. 경북 사람들과 부산. 경남 사람들. 그런 경기에 술이 빠질 수가 있겠는가. 물론 술 지참은 허용되지 않았다. 한 친구가 묘안을 짜냈다. 술 장수와 짜고 외야 쪽에서 줄을 이용해 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확보된 게 팩소주 열 병.
경기는 무르익어가는데, 미칠지경이었다. 8외까지 롯데는 삼성에 3대4로 밀리고 있었다. 최동원도 잘 던졌지만, 삼성 김일융도 너무 잘 던졌다. 패색이 짙었다. 1사 후 유두열이 들어섰다. 5번타자. 앞의 3, 4번 김용희, 김용철이 안타를 치고 나가 주자 1, 3루가 됐다. 유두열은 그 때까지 타격이 좋지 않았다. 강병철감독은 그래도 그를 믿었다. 우리들은 낙담을 잘 한다. 그냥 술이나 마시자. 그래도 어딘가, 롯데촌놈들이 서울에 올라 와 준우승하는 것만도 다행 아닌가. 그런 생각들 속에서도 그래도 하는 기대가 왜 없었겠는가. 옆 친구가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취기어린 내 눈은 술잔에 꽂혔다. 그 순간  ‘딱’하는소리, 이어서 잠실벌이 들석거리며 날아갈 듯한 함성.

유두열이 김일융의 직구를 받아 친 회심의 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볼은 레프트 외야쪽, 우리가 앉아있는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파울 볼일 수도 있다는 조바심. 그러나 홈런이었다. 3점짜리 역전홈런. 잠실구장이 진짜로 뒤집혀졌다. 난리가 난 것이다. 경기는 6대4, 롯데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그 역전 홈런 한방으로 유두열은 영웅이 됐다. 유두열이 친 그날의 홈런은 우리들 하고도 관계가있다. 유두열이 친 그 홈런 볼이 신기하게 우리 쪽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그 공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손에 만스치고 놓쳐버렸다. 애석해 할 필요도 없었다. 이겼다는것 만으로도 족했기 때문이다.

유두열은 그 후로도 우리들의 기대를 저바리지 않았다. 유두열은 더구나 마산출신 아닌가. 한문연, 박정태 등과 함께  마산야구의 기개를 더 높인 게 유두열이다. 오늘 아침 유두열의 부음을 접하고 새삼 그 날이 떠올려지며 추모의 염을 전하고싶다. 하늘나라에서도 먼저 간 최동원과 함께 그곳의 야구를 즐기기를 바란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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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9월 2일 at 2:57 오후

    돌아가신 남편이 북면출신이라 이 선수를 좋아했지요.
    물론 우리 가족은 지금도 롯데팬입니다.

    저도 명복을 빌어 드립니다. 편히 가십시요.

    • koyang4283

      2016년 9월 2일 at 3:38 오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너무 일즉 세상을 뜬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사람도 가고, 그 사람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2. 바위

    2016년 9월 5일 at 1:08 오전

    저도 프로야구 원년부터 롯데팬이었지요.
    경남엔 프로야구 구단이 없었기에 마산상고(지금은 용마고로 알고 잇습니다) 출신들이 롯데에 많았습니다.
    지금 엔씨가 경남구단으로 있지만 그래도 롯데에 대한 아쉬움은 많습니다.
    아직도 롯데가 엔씨에 깨지면 성이나니까요.
    하지만, 이젠 프로야구 보지도 않고 롯데에 대한 미련도 접었습니다.
    지금도 엔씨는 남의 구단 같은 생각입니다.

  3. koyang4283

    2016년 9월 5일 at 6:59 오전

    롯데가 지금 여러가지로 엉망이지요. 롯데는 프로야구 부산. 경남 팬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차려야지요.

  4. 최연충

    2016년 10월 18일 at 10:55 오후

    유두열, 고교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년배입니다. 당시 마고는 제가 입학하기 전해인 71년에 야구부가 부활되어 투수로는 2학년 강정일, 1학년 감사용이 있었고 타자로는 2학년 김종일(나중에 인천고로 전학), 최청호 1학년엔 노재홍, 신동웅, 이석규등이 있었지요. 하지만 전통의 강호 마산상고를 대적하기엔 전력이 턱없이 약했습니다. 당시 상고는 정학수,주수철,우진언, 유두열 등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72년인가 73년인가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정학수가 미기상, 우진언이 맹타상을 타서 중앙지에 크게 보도될 만큼 전국적 강호였으니 신생팀 마고로서는 족탈불급이었습니다. 그 상고의 핵심전력이 포수 유두열이었지요. 찬스때 그가 타석에 나오면 언제 장타가 터질지 몰라 마음졸였던 기억이 납니다. 한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선수였는데, 너무 일찍 갔군요. 명복을 빕니다.

    • koyang4283

      2016년 10월 19일 at 3:06 오후

      마고 출신이신데, 혹여 최 대사 아닌가요. 저는 29회 김영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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