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樂園’의 그 시절과 윤 열수 선생

우리는 그 때를 곧잘  ‘상락원 시절’이라고 부른다. 아현동 굴레방고개 넘어가는 곳에  ‘상락원(常樂園)’이 있었다. 1970년대 말이다. 상락원은 표구사를 겸해 옛 물건들을 사고파는 골동품가게다. 주인장은 윤열수선생. 그 무렵 조자용 박사가 하는 에밀레박물관에 다니면서 함께 그 점빵을 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유신독재가 마지막 숨결을 허덕이고 있던 시절이다. 우리들은 그곳에 모여 술을 마시고 문화를 이야기하고 시국을 논했다. 상락원은 말이 골동품가게지, 거기를 통해윤선생이 딱히 어떤 영리를 도모하는데는 크게 신경을 쓰지않았던 것 같다. 그저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고나 할까.

우리들, 그러니까 나와 이주흥, 송인성 등 마산사람들이 윤 선생을 알고 상락원을 들락거리게된 것은 한석태 선배 때문이다. 그 선배가 윤 선생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같이들 함께 어울렸다.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니던 석태 형 주변에는 문화계 친구들이 많았다. 탈춤의 채희완, 대금의 김영동 등이 생각난다. 김민기도가끔 씩 들렀던 것으로 생각난다. 윤선생은 당시 신혼이었다. 최진옥 여사가 부인이다. 이화여대 사학과를 다녔던 최 여사를 고리로 해 문화예술에 밝은 이대생들도 꽤 들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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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상락원의 그 윤 선생을 위한 모임이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열렸다. 7순을 맞아 지인들과 제자들이 마련한 논총 헌정의 자리다. 윤 선생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윤 선생은 우리 민화와 부적에 관한 연구와 탐사로 평생을 일관한, 우리 문화계의 흔치않은 박물관 같은 사람이다. 서울 북촌 가회동에서 민화박물관을 열어 각종 민화를 전시하는 한편으로 연구와 후학 양성에 아직도 정성을 쏟고있다. 상락원 시절이 벌써 40년도 더 됐다. 그 시절이 윤 선생의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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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는 평소 윤 선생을 좋아하고 아끼는 많은 지인들과 제자가 나왔다. 최진옥 여사도 나왔다. 최 여사와는 정말 오랜만이다. 한국학중앙연구소 교수를 오랫동안 하고 정년했다. 윤 선생을 위한 기념 논총 봉정식이었지만, 주인공은 최 여사 같았다. 그의 내조가 그 만큼 컸다는 얘기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최 여사의 노고를 위한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뒤풀이가 참 즐거웠다. 윤선생, 최여사와 모처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상락원 얘기가 빠질 수 있겠는가. 그 시절로 다시돌아가는듯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서광태라고 나의 마산중학 동기인 친구도 상락원을 들락거렸다는것. 그리고 그곳이 인연이 돼 미술을 하던 한 고향후배와 혼인에 이르게됐다는 것이다.

윤 선생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최 여사 말 맞다나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위인답게 술병을 들고 이 자리저 자리를 다니며 술을 권커니 받거니하고 있었다. 모르던 사람들과도 이내 친해져 얘기를 주고받게하는 뒤풀이였다. 마주앉은 안휘준 서울대명예교수, 그리고 주흥이 곁에 앉은, 울산의 여성신문 객원기자로 있는 아주머니와도 술잔을 부딪치며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었다.

윤 선생의 푸념아닌 푸념이 재미있다. 이제 우리 민화를 좀 알 것 같은데, 나이 이제 70이라고 뒷방신세로 깔아 뭉개려 한다는 것. 그 푸념에 대한 덕담이 쏟아졌다. 알았다. 그 푸념을 받아주겠으니 120살까지만 살아라.

윤범모 교수는축시를 바쳤다. 제목이 ‘얼쑤, 열수!’다. 익살맞은 우리 민화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어허, 얼쑤/장안에 도깨비가 나타났다던데/까치호랑이와 책거리/모란도와 문자도/구겨진 그림 펼치고 있다던데/가회골짜기에서 민화박물관 차려놓고/음지에 햇볕들게하면서/민화동네를 외롭게 지키고있다던데/어허, 얼쑤…(중략) 물렀거라/민화왕초 납신다/세계 그 어떤 그림이 여기와서 폼 잡을 수 있겠느냐/민화왕국 깃발 드높게 올라간다/태평성대의길상그림이로구나/어허, 좋을씨구/얼쑤, 열수/열수, 얼쑤”

뒤풀이를 나와서도 그 기분은 이어졌다. 결국 주흥이와 나는 신촌의 한주막에서 정종으로 이 날의 대미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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