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날로그的 크리스마스
독일 사람과 어떤 거래를 하는데, 배송이 지연되길래 문의를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배송이 늦어질 거라는 답이 왔다. 답을 받는 순간, 아, 그렇지 했다. 원래 유럽 쪽은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다. 그러니 휴가도 길고, 사람들도 들뜨면서 일들이 좀 느슨해진다. 오랜 만의 이베이(eBay) 거래라 그걸 까먹었다. 그러면서 문득 뭔가를 일깨워지는 것 하나. 독일 사람이 언급한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번뜩 나의 그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 크리스마스라는 게 있었지라는 것과 이즈음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점을 일깨워준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크리스마스 또한 점차 멀게 느껴진다. 지금은 성당엘 나가지 않는 이른바 ‘냉담자’지만, 살고있는 구역에서는 매년 잊지않고 고백성사표를 달력과 함께 갖다 준다. 그 때마다에도 문득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였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낸지 오래다. 올해도 물론 송구스러움으로 받긴 받았지만 크리스마스는 저 먼 한편에 있었다. 예전 젊었을 적에는 그렇지 않았다. 12월 한 달을 온통 그 분위기에 젖어 있었고, 이브 때는 성탄미사를 밤을 새워 보내기가 일쑤였다. 아내도 물론 그랬다. 하지만 먼 옛날이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일깨워진 크리스마스를 이즈음 다시 느껴보는 건 아무래도 추억의 한 요소로 다가오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 난 기사가스파킹의 하나가 됐다. 옛날 영화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기사였는데, 소개된 영화 가운데 멕 라이언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순간 크리스마스가 확 느껴져 온 것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Night in Seattle)’이 그 영화다.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이 생각난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멕 라이언이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가는 모습. 그리고 톰 행크스와의 사랑이 이뤄지면서 뉴욕의 밤 하늘을 수놓던 하얀 눈방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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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게 1993년인데, 그 후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와 멕 라이언과 사랑을 생각하는 영화로 남았다. 그 무렵 카세트 테이프로 나온 이 영화 OST도 인기였다. 그 때 구입한 것을 찾아보니 아직도 있었다. OST엔 추억의 옛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냇 킹 콜의 ‘스타더스트’, 태미 와이어넷의 ‘스탠 바이 유어 맨’, 루이 암스트롱의 ‘A Kiss to Build A Dream’, 칼리 사이먼의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 등이 나온다. 오늘 그 테이프를 다시 들어 보았다. 그 느낌이 슬며시 내게로 들어왔다.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의 또 다른 영화인 ‘유브 갓 메일(You’ve Got A Mail)’에도 크리스마스의 신이 물씬하다. 둘 간의 사랑의 한 가운데 자리하는 게 크리스마스다. 그래서 내게는 크리스마스 하면 멕 라이언이 떠 오르고 이 영화 두 편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게 다시 일깨워진 것이다. 멕 라이언의 영화가 연말부터 연초까지 다시 재개봉된다는데, 시간을 내 보러 갈 계획이다. 멕 라이언의 옛 영화가 재개봉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뭔가 좀 따뜻하면서 작은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를 사람들이 찾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대작 위주의 블록브스터나 SF 보다는 이야기의 힘과 감성이 묻어나는 영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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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브 갓 메일’은 ‘디지털적 아날로그’ 영화다. 영화는 이메일이란 메신저를 통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나온 게 1998년이다. 인터넷 융성의 초입기였고 이메일이 메신저의 총아로 등장하고 있던 무렵이다. 인터넷과 이메일은 당연히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도구다.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참 촌 스럽다. 그래서 티지털 도구를 소품으로 한 영화였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더 그립다. 마우스의 딸깍딸깍하는 소리, 손바닥 모양의 아이콘, 커서의 깜빡거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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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모처럼 느껴지는 나의 크리스마스도 아날로그적이다. 흘러간 영화나 흘러간 노래 속에서 그것을 느껴보는 감성이 그렇다.
마침 독일 사람이 보낸 물건이 마침 오늘 도착했다. 옛 카메라다. 콘타플렉스(Contaflex). 1950, 60년대를 풍미했던 짜이스 이콘(Zeiss Ikon)의 리플렉스 사진기다. 렌즈가 세 개다. 표준과 광각, 망원이다. 플래시도 있다. 무슨 전구 같은 것을 꽂아 펑 터뜨리면 번쩍하고 터지던 그 플래시다. 이 카메라와 렌즈로 사진을 찍을 것이다. 흑백필름이면 더 좋겠다. 
이것들을 펼쳐놓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OST를 듣고 있다. 누가 뭐라하든 나는 정말 아날로그적이다. 나의 크리스마스도 그렇다.

5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12월 21일 at 6:44 오후

    요즘은 거리에서 캐럴도 들을수 없고
    삭막하지요. 저역시 아나로그로 사는 인생이라
    옛것이 더 좋아요.

    • koyang4283

      2016년 12월 22일 at 6:49 오후

      맞습니다. 옛날엔 이 무렵 명동을 나가면 온통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 넘쳤지요. 지금은 거리의 캐럴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가 오고가는 것을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거리의 그런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어 거리를 쏘다니던 게 벌써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 journeyman

    2016년 12월 22일 at 10:53 오전

    어제 CGV에 갔더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재개봉 포스터가 붙어있더군요.
    앳띤 맥 라이언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 koyang4283

      2016년 12월 22일 at 6:44 오후

      28일 개봉이라는데 기다려집니다. 일산 CGV에서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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