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먹방’의 그늘
추운 겨울 낮, 한 잔 술을 즐기는 ‘낮술’의 안주로는 뜨끈한 국밥이 제격이다. 어제가 그런 날이다.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는 친구로부터의 제안, 어디 가서 낮술 한 잔 하자. 그러면서 그 친구가 들먹인 곳이 바로 그곳인데, 영등포 시장 운운하는 말에서 감이 왔다. 얼마 전 어떤 방송을 탄 집이고, 우연히 그 방송을 본 후 마음에 담아놓고 있던 집이다.
오후 해질 녘, 혼자 먼저 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유명한 집이라 한 낮이라도 자리잡기가 그리 수월치 않다는 글을 어떤 후기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식당은 ‘덕’자로 시작하는 평범한 옥호마냥 수더분했다. 영등포 시장 동네에 붙박이처럼 오래 자리를 지키고있는 좀 오래된 식당 그 자체였다. 주인 아주머니도 그랬고.
기대감이 없을 수 없다. 꼬리곰탕으로 방송을 탄 식당이라, 그것을 염두에 두었지만 다른 메뉴, 이를테면 방치탕이라든가 중토막이라는, 듣기에 좀 생경한 것들도 구미를 당긴다. 하지만 그것들은 식사 메뉴에 포함되고 있어, 혼자서 기다리는 주제엔 맞지 않았다. 소머리수육과 소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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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머리는 국밥에 익숙해진 탓이라, 안주감으로 좀 내키진 않았지만 우족 등 다른 수육은 그 시간에 이미 고기가 떨어져 없다고 했다. 
소머리수육은 처음 한 점 입맛이 중요하다. 그 맛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 집 것은 그저 그랬다. 기대가 큰 탓이었을 것이다. 한우라는 선입관도 좀 있었을 것이고. 그저 그렇구나고 느낀 것은 그 수육이 식어질 것에 대한 일종의 우려가 담겨있다. 따라 나온 국물도 그랬다. 나름 경험을 토대로 한 수육 감별법이라고나 할까. 어떤 수육이든 갓 삶아 내놓을 때 것은 맛 있다. 하지만 그게 식어져가면서 그 맛이 드러난다. 두 세점 먹은 후 일단 기대를 접었다. 친구가 온 후 좀 데폈다. 친구도 그랬다. 몇 점을 먹다가 다른 것을 시키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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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꼬리곰탕을, 나는 중토막이라는 것을 시켰다. 방치탕이라는 것은 다른 자리에서 시켜먹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다. 어마어마한 일인분의 양에 기가 질렸다. 방치는 소 엉덩이 쪽의 뼈 부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데, 뚝배기에 담겨진 살이 붙은 뼈다귀가 크기도 그렇지만, 그 양이 엄청났다. 이미 소머리수육에 질려진 내 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토막도 대략 같은 부위의 뼈와 고기라는데, 뚝배기 반 정도를 차지하는 토막 크기가 담긴 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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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얘기하자면 꼬리곰탕이나 중토막 맛도 그저 그랬다는 게 나의 솔직한 느낌이다. 친구도 그랬다. 역시 기대가 큰 탓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먹는 꼬리곰탕을 보고 나는 충무로에 지금도 있는 ‘P옥’의 그것이 문득 떠올려졌다. 지금도 그 맛인지는 모르겠다. 그 집은 꼬리도 맛 있었지만, 겉절이 김치로 더 유명했다. 중토막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저 살이 좀 많이 붙은 주먹 크기의 뼈다귀로 보면 되겠다. 그런 류의 뼈고기는 많다. 하지만 중토막이라는 부위 그 자체의 맛이 어떤 것인지를 딱히 표현하기가 나로서는 난감하다. 그래서 그저 그런 맛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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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앞에서 약간 언급했듯 소의 고기와 뼈를 주 재료로 한 탕을 파는, 그저 동네의 오래되고 동네 사람들이 즐겨찾는 ‘평범한 식당’이라는 느낌이다. 방치라든가 중토막이라는 좀 특이한 이름의 메뉴로 알음알음 좀 알려졌을 뿐이다. 그게 어느 날 방송을 타면서 갑자기 소문난 맛집, 유명한 맛집이 된 것이다. 명소가 된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전화를 자주 받고 있었다. 어디서 물어물어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어떤 후기에는 그 집 자리잡기가 무척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이 돼도 빈자리가 많았다. 그 빈자리를 인근의 영등포 시장이나 공구상가 등 동네사람들이 메워주고 있었다. 이른바 ‘먹방’의 위세가 한바탕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평온’을 되찾아가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하여튼 나로서는 이 번이 지난 번 종로3가 닭볶은 탕 집에 이어 두번 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집이라는 것. 이 속담성 경구는 무분별하고 상업적인 ‘먹방’에 반드시 적용돼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12월 29일 at 8:42 오전

    어느핸가 남도지방을 여행하다가 나주에 그 유명하다는 곰탕집을
    찾아 갔었는데 어찌나 불친절하든지, 손님 보기를 원수보듯이
    해서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툴툴대며 나온적이 있었습니다.
    그후로 절대로 방송에서 소개하는 맛집은 안 가고 있어요.

    여기는 눈이 좀 내렸습니다.
    마음은 아직도 눈밭속을 뛰노는 어린아이 같은데 몸은… ㅎㅎ
    건강 하십시요.

    • koyang4283

      2016년 12월 29일 at 10:29 오전

      저에게도 하나의 불문율로 자리잡아 가고있는듯 합니다. 방송을, 특히 이른바 ‘먹방’을 탄 맛집은 가지 않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방송의 상업적인 과장을 접하면 기대가 생기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당연한데서 오는 괴리감이겠지요. 계신데가 눈이 왔다고 하셨는데, 어디 댁을 떠나 계신 모양입니다. 편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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