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不在하는 시간

며칠 전부터 이래저래 말이 많다. 안 하던 짓이다. 나더러 뭘 직접 해보라고 아내가 주문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세탁기 돌리는 일 등이 그것이다. 세탁기는 예전에도 몇 차례 돌려본 적이 있어 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그동안 까먹었을 터이니 다시 한번 직접 돌려보라는 것이다. 몇 차례 웃고 넘겼는데도 자꾸 그러니 짜증이 난다. 그랬더니 아내는 또 왜 짜증을 내느냐며 달겨들 태세다. 아내가 좀 민감해졌다.
아내는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다. 5일 출발하는데, 자기 없는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나름 신경 쓰여지는 모양이다. 하기야 길어야 2-3일 안팍의 여행만 다녔으니 10여일 집을 비운다는 게, 여간 신경이 쓰여지는 갑다. 모두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 시키는대로 해 본다. 잘 될리가 없다. 아내는 그 봐라 한다. 두어 차례 실습을 하다 결국은 순서와 넣을 것 제대로 넣고하는 식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세탁기를 끝내고나니 또 다그치는 게 있다. 
음식찌꺼기 버리는 일이다. 그것, 그냥 갖다 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며 또 빼쭉했다. 그랬더니 직접 따라 와 버리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몇 차례 실랑이 끝에 어제 아침 아내 출근 길에 따라 나섰다. 과연 내가 생각했던 바가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그것을 담았던 봉지를 따로 버리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대로 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준수’를 강조했다.
오늘 아침엔 또 다른 것을 주입시키고자 한다. 큰 아이 출근하기 전에 먹어야 하는 먹 거리에 관한 것이다. 그거 지가 챙겨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새벽 즈음에 출근하려면 잠도 부족하니 반드시 챙겨줘야 한다는 것. 아기 우윳병 비슷한 것에 우유를 정해놓은 눈금에 맞춰 따르고, 그기에 미숫가루를 두 숫가락 넣어라는 것. 아이가 빤히 쳐다 보는 것 같아 끽 소리 못하고 알았다고 했다.
들고 갈 트렁크는 벌써 며칠 전부터 안방에 모셔져 있다. 아내는 그 트렁크에 매일 옷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옛 옷들이 장롱 서랍 등에서 나온다. 아내는 그 옷들에 대한 주문도 덧붙인다. 이거는 버리고, 저거는 세탁소 갖다주고 등등. 먼 여행을 떠나는 아내는 좀 들떠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심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하기야 일상을 한동안 벗어나는 것이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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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지지 않는다. 내가 먼저 가든, 아내가 먼저 가든 언젠가는 서로가 영영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좀 긴 여행은 그 날의 축소판일 것이고. 그러니 귀찮아 하고 신경질 부릴 일이 아니다. 좀 비약일 수 있겠지만, 그 날에 대비하는 일일 수도 있다.
타고 가는 비행편의 항공사가 영 마음이 안 든다. 근자에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나라 항공사다.  그런 말을 했더니,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한다. 만일 무슨 일이 있으면 보험 잘 챙겨요. 그 말에 짜증이 또 확 났다. 아니 죽으러가는 길도 아닌데 무슨 그런 말을 하는가. 아내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혼자서 뭔가를 궁얼거린다. 교보. LG. 우체국, 또 뭐 있더라. 아마도 들어놓은 보험을 꼽아보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 아내와의 이 대화가 하나의 액땜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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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월 4일 at 2:30 오후

    잘 다녀 오실겁니다.
    여자들은 다 남편 혼자 두고 가는게
    미덥지가 않아서 주문이 많거든요.
    그만큼 남자들이 여자만큼 세심하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두분 사시는 모습에 싱긋 웃음이 나옵니다.
    행복한 일상이거든요.

  2. koyang4283

    2017년 1월 15일 at 10:27 오전

    잘 다녀왔습니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어제, 혹한의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아내가 도착할 즈음 하늘에 비행기 한 대가 나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직감이 왔습니다. 저 비행기에 아내가 타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한 시간 쯤 지난 후에 도착을 알려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믿고 있지요. 그 비행기에 아내가 타고 있었다고. To believe is to see

  3. Shanna

    2017년 1월 16일 at 4: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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