洶洶한 꿈들
어머니가 컴컴한 곳에서 홀로 울고 계신다. 같이 부둥켜 앉고 울고픈데 울만한 곳도, 그럴만한 분위기도 아니다. 아내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혼자서 야박하게 떠나려하고 있었다. 자고있는데, 장모님이 쓸쓸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사코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칼을 들고 물속에 앉아 있는데, 칼이 스스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물이 핏빛으로 서서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 몇 날 꿈이 안 좋았다. 자다가 이런 류의 꿈 때문에 몇 번 깬 적도 있다. 걱정 때문이었다면 그럴만한 걱정거리는 있었다. 아내가 멀리 해외 여행 중이었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감기에다 차 멀미까지 겹쳐 여행 온 게 후회막급이라는 메시지에 그저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그러는 와중에 흉흉한 꿈을 연속으로 꾸었으니 여간 뒤숭숭하고 집집하지 않았다. 아내는 무사히 돌아왔다. 돌아오는 날 저녁에 많이 취해 귀가했다. 아내가 무탈하게 돌아왔으니 마음 좀 편하게 한 잔한 것이다. 취중에 아내에게 꿈 얘기를 한 모양이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 얘기를 오늘  아내가 한다.
안 좋은 꿈은 결국 대구의 어머니에게 달라 붙었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뇌졸중이라고 한다. 깊은 밤인데 내려갈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아내와 안절부절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온 게 꿈 이야기다. 어머니 때문이었구나. 내가 아내에게 취중에 한 꿈 이야기 중의 하나는 장모님에 관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 얘기를 하면서 아내더러 연락을 한번 드려보라 했다는 것이다.
며칠을 이어진 악몽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가 나타났고 장모님도 나타났고, 칼이 물에 녹으며 피로 변하는 꿈은 끔찍했다. 장모님의 꿈 속 모습은 너무 가슴이 아파 비몽사몽 간에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그 꿈들로 인해 뒤숭숭한 마음에서도 무탈을 기원했는데, 결국은 어머니에게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조카가 전화를 한다. MRI 촬영 결과, 고령이지만 시술의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나의 동의를 구했다.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을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날 새는대로 내려갈 것이다. 또렷한 정신으로 움직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것이다. 전화위복의 악몽이기를 온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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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olet’s Birthday: 1926 – Washington, D.C., circa 1926. “Mrs. Gardner Orme group,” a.k.a. the Little Foxes. National Photo Company Collection glass negative. (photo from www.shorpy.com)

6 Comments

  1. J Kim

    2017년 1월 16일 at 11:56 오전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비보에 많은 충격을 받으셨겠습니다. 저도 4년전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이 어머니가 말기암을 선고받으셨다는 연락을 받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기에 바로 찾아뵐 수가 없어 가는 날까지 회사에서 회의를 하면서도 목이 메여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하면 목이 메이고 많이 그립습니다. 고양님의 어머니께서 하루속히 쾌차하시길 빕니다.

    • koyang4283

      2017년 1월 17일 at 7:26 오전

      그러셨군요. 제 어머니는 2년 전 암 수술을 하신 후 지금껏 잘 계셔왔습니다. 그저께 한 밤 중에 저녁 잘 자신 후 쓰러졌습니다. 뇌졸중이었어요. 마침 가족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고, 119와 연락이 잘 되어 이른바 ‘골든 타임’으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흉몽들이 전화위복이 되기를 아직도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 번 글로 유추해보니 오빠는 마고 37회일 걸로 생각됩니다. 그 동기들 몇몇과는 잘 지내고 있지요. 따뜻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J Kim

        2017년 1월 18일 at 6:19 오전

        가족들이 계셔서 빨리 대처할 수 있었다니 천만다행입니다. 고양님 말씀대로 흉몽들이 전화위복이 되기를 빕니다. 오빠의 마고 기수는 모르지만 78년에 졸업하고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90년대 후반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살고있습니다. 저는 대학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90년대 초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이 곳에서 결혼을 하고 취직해 살고있습니다. 저의 친정은 10 여년 전에 창원시로 이사를 해 마산에는 친지 중 살고있는 사람들이 없지만 저와 오빠들이 나서 자란 곳이 마산이니 고향은 항상 마산이지요. 집필하신 “그 곳에 마산이 있었다”는 책은 한국에 살고있는 오빠에게 몇 부 구입해 읽고 각자 소장하자고 했더니 반가워하더군요. 건필하십시오.

        • koyang4283

          2017년 1월 18일 at 4:08 오후

          고맙습니다. 당분간 마산에서 생활할 것 같습니다. 선배가 운영하고 계신, 마산과 인근의 문화를 연구하는 ‘문창문화연구원’에서 선배를 도우게 됐습니다. 고향 마산에서 마산 소식을 자주 전하겠습니다.

  2. 데레사

    2017년 1월 16일 at 1:14 오후

    모든게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병원에 빨리만 가면 뇌졸중도 후유증없이
    낫던데요.
    기쁜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 koyang4283

      2017년 1월 17일 at 7:29 오전

      우려보다는 일들이 잘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켜봐야 합니다. 그나마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분으로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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