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self’ 生日 미역국
웬 미역국인가 싶었다. 어머니 뵈러 전날 새벽 대구에 내려갔다 쉬지도 못하고 당일 또 차를 몰아 올라 온 아내다. 그 아내가 설 연휴 중인데도 새삼 미역국을 끓인 것이다. 이번 설에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병환 때문에 차례를 지내지 못했다. 당연히 설 음식이 있을리 없다. 그것을 감안해 동태전 정도 조금 장만해 먹자던 아내였다. 나라고 별 생각이 있었을리 없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입맛을 잃어버린 처지에 그게 된장국이든 미역국이든 큰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면서 아내는 아이가 사 놓은 빵을 냉장고에 넣느니 마느니한다. 나더러 먹고 싶으면 여기에 넣어 놨으니 꺼내 먹으라는 것이다. 오전 중에 외출을 하고 들어오니 그 빵이 생각났다. 그러나 빵은 냉장고에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빵은 냉장고에 넣지않고 그냥 들고 나왔다고 했다. 일을 하다 먹고 싶으면 먹으려는 것이겠지. 잘 했다고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좀 머쓱해져 한마디 보탰다.
내일 또 내 생일인데, 아무 것도 장만하지 마라. 감기 때문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내 생일은 설 명절 며칠 후다. 그래서 항상 생일은 음식이 풍부했다. 그래도 아내는 별도의 생일 음식을 항상 장만했다. 아내에게 그런 당부를 한 것은 진심이다. 무슨 맛인지를 모르고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내의 대답은 앞서 있다. 이미 시장을 봐 놓았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날 뜨끈한 소고기 국이나 끓이지 뭐… 그런 대답에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미역국이 퍼뜩 떠 올랐다. 며칠 전 미역국 끓인 거 내 생일 때문에 미리 한 거 아니냐. 아내의 대답이 잠시 끊기는 느낌. 피-힉 하는 웃음이 들려왔다. 그게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르겠다. 왜 그러느냐고 묻기도 전에 아내의 말이 이어진다. 그거? 그거는 내 생일 미역국이지.
아차, 싶었다. 아내의 생일을 까먹은 것이다. 아내는 양력을, 나는 음력을 쇠는데, 올해는 그 날 차이가 며칠 간격이다. 결혼 후 37년 동안 아내의 생일 날을 잊은 적은 없다. 그리 비싼 선물은 못해도 나름 정성으로 맞아왔던 아내의 생일 날이다. 요 몇년 간은 소고기 국을 끓여주기도 했다. 좋은 한우에 대파와 무 숭숭 썰어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후 고추가루를 듬뿍 넣는 마산식 소고기 국안데, 아내는 내 정성이 갸륵(?)해 보였는지 그런대로 맛 있게 먹어 주었다.
그 미역국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아내 생일을 모르고 지나치는 바람에 아내가 자기 손으로 손수 끓인 생일 미역국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 미역국을 태연히 먹었고, 더구나 그날 선.후배들과 새해 시주회를 한답시고 고주망태가 돼 들어왔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 앞에서 낮아지는 일이 잦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카톡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미안하다. 얼마 전에는 결혼 기념일도 그냥 넘겼다. 그 때는 내가 모르고 넘긴 게 아니고 아내가 유럽에 있었기에 그런 불가피성이 있었다. 그 때도 카톡 메시지로 대신했다. 그 메시지를 쓸 때는 구구절절한 심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어떻게 썼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결혼 37년, 그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내용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적은 기적이다. 아내가 그 시절을 흘러 이제 환갑을 살짝 넘겨가고 있다. 이 또한 거의 기적에 가깝다. 암만.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면서 아내는 아이가 사 놓은 빵을 냉장고에 넣느니 마느니한다. 나더러 먹고 싶으면 여기에 넣어 놨으니 꺼내 먹으라는 것이다. 오전 중에 외출을 하고 들어오니 그 빵이 생각났다. 그러나 빵은 냉장고에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빵은 냉장고에 넣지않고 그냥 들고 나왔다고 했다. 일을 하다 먹고 싶으면 먹으려는 것이겠지. 잘 했다고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좀 머쓱해져 한마디 보탰다.
내일 또 내 생일인데, 아무 것도 장만하지 마라. 감기 때문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내 생일은 설 명절 며칠 후다. 그래서 항상 생일은 음식이 풍부했다. 그래도 아내는 별도의 생일 음식을 항상 장만했다. 아내에게 그런 당부를 한 것은 진심이다. 무슨 맛인지를 모르고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내의 대답은 앞서 있다. 이미 시장을 봐 놓았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날 뜨끈한 소고기 국이나 끓이지 뭐… 그런 대답에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미역국이 퍼뜩 떠 올랐다. 며칠 전 미역국 끓인 거 내 생일 때문에 미리 한 거 아니냐. 아내의 대답이 잠시 끊기는 느낌. 피-힉 하는 웃음이 들려왔다. 그게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르겠다. 왜 그러느냐고 묻기도 전에 아내의 말이 이어진다. 그거? 그거는 내 생일 미역국이지.
아차, 싶었다. 아내의 생일을 까먹은 것이다. 아내는 양력을, 나는 음력을 쇠는데, 올해는 그 날 차이가 며칠 간격이다. 결혼 후 37년 동안 아내의 생일 날을 잊은 적은 없다. 그리 비싼 선물은 못해도 나름 정성으로 맞아왔던 아내의 생일 날이다. 요 몇년 간은 소고기 국을 끓여주기도 했다. 좋은 한우에 대파와 무 숭숭 썰어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후 고추가루를 듬뿍 넣는 마산식 소고기 국안데, 아내는 내 정성이 갸륵(?)해 보였는지 그런대로 맛 있게 먹어 주었다.
그 미역국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아내 생일을 모르고 지나치는 바람에 아내가 자기 손으로 손수 끓인 생일 미역국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 미역국을 태연히 먹었고, 더구나 그날 선.후배들과 새해 시주회를 한답시고 고주망태가 돼 들어왔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 앞에서 낮아지는 일이 잦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카톡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미안하다. 얼마 전에는 결혼 기념일도 그냥 넘겼다. 그 때는 내가 모르고 넘긴 게 아니고 아내가 유럽에 있었기에 그런 불가피성이 있었다. 그 때도 카톡 메시지로 대신했다. 그 메시지를 쓸 때는 구구절절한 심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어떻게 썼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결혼 37년, 그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내용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적은 기적이다. 아내가 그 시절을 흘러 이제 환갑을 살짝 넘겨가고 있다. 이 또한 거의 기적에 가깝다. 암만.
journeyman
2017년 2월 1일 at 3:52 오후
언제부턴가 아침에 미역국이 나오면 일단 달력부터 살피게 되더군요.
양력이면 그나마 계산이 빠른데 음력인 경우에는 아차하면 놓치는 수가 있어서 말이죠.
그래도 아내분 생일 때 국가지 하신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요리에 젬병이라서 쉽지 않더군요.
koyang4283
2017년 2월 2일 at 8:57 오전
나이를 먹어가니 생일과 관련해 여러가지로 눈치 보여지는 데가 많습니다. 음. 양력의 구분에 따른 날짜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하지요. 저는 요리를 딴에는 좀 하는 편이라 아내 생일 국 끓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정성이 문제겠지요. 이래저래 나와 아내 생일을 보내고 나니 올 한 해 다 산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박근혜 생일이라고 합니다. 묘한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J Kim
2017년 2월 2일 at 8:25 오전
아내분 생일을 깜빡 잊어버리셨군요. 무척 난감하셨겠어요. 저도 수 년전 직장에서 아주 바빴던 때 남편 생일을 잊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생일이 지난 며칠 후 생각이 나 정말 미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양님처럼 저의 남편도 저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거든요. 마산식 소고기국으로 아내분의 마음을 달래셨다니 이해하셨을 겁니다. 얼큰한 마산식 소고기국 생각납니다. 예전에 저의 어머니께서도 끓여주셨었지요. 고양님 어머니 병환에 차도가 있어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시길 빕니다.
koyang4283
2017년 2월 2일 at 9:02 오전
이번에 딱 한 번 깜빡했습니다. 사실 1월 들어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내도 그 걸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결국 소고기 국을 끓였습니다. 근데 그 맛이 별로입니다. 감기 입 맛 탓이려니 하지만, 아무래도 옛 맛이 나질 않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신 것에는 대파가 무척 많이 들어갔습니다. 대파의 단 맛과 고추가루의 매운 맛이 앙상블을 이룬 그 맛은 아무리 재현해보려해도 안 됩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맛 있게 먹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어제 한 냄비를 통채로 비웠습니다.
J Kim
2017년 2월 2일 at 8:31 오전
어머니께서 퇴원하셨다는 글을 지금에야 봤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koyang4283
2017년 2월 2일 at 9:03 오전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7년 2월 2일 at 10:01 오전
휴대폰 달력에 일년 기념일을 저장해 놓으세요.
그렇게 해놓으면 알람이 울리니까 절대 까먹는
잍 없거든요.
미역국 까지 끓이시는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더 나이들면 깜빡 깜빡도 더 잦을테니
꼭 달력에 저장 해 두세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koyang4283
2017년 2월 2일 at 7:08 오후
일년의 하루, 그것도 정해진 날을 휴대폰 달력에 저장해 놓는다는 게 좀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집 달력이나 데스크 다이어리에 반드시 해가 바뀌면 적어 놓았습니다만, 올해는 어쩌다 그리 되었습니다. 그만큼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아내는 무덤덤해 합니다. 그게 더 마음에 걸립니다. 따뜻한 댓글,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