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掌篇)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오랜 만에 만난다. 지난 연말에 어떤 글을 쓸 게 있어 야스나리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의 어떤 작품의 문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 만난 야스나리는 나에겐 전혀 새로운 것이다. 이름하여 야스나리의 ‘장편 소설’이다. 장편이라 함은 긴 소설을 뜻하는 게 아니다. 손바닥 ‘장掌)’으로, 풀이하자면 ‘손바닥 소설’이다. 이런 장르가 있었나 싶었다. 손바닥 소설은 말 그대로 손바닥 크기의 분량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200자 원고지로 대략 10 여매 안팍으로 쓰여진다는 것인데, 야스나리의 이 소설집에서 제일 짧은 것은 원고지 2매 분량의 것도 있다.

이런 류의 소설을 야스나리는 1920년대 초부터 썼다고 하는데, 그간 야스나리에 관해 좀 안다고 설쳐댔던 게 무지 창피스럽다. 야스나리의 손바닥 소설은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모두 175편을 쓴 것으로 나와있다. 이 소설집에는 그 가운데 68편을 선별해 옮긴 것이다. 야스나리의 이 장편 소설들은 말하자면 그의 문학의 초본 같은 느낌이 든다. 야스나리 자신이 좀 수줍게 말했듯 그의 문학의 ‘표본실’이라해도 무방할듯 하다.

나는 이런 짤막한 소설이 좋다. 긴 소설이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에전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을 읽을 때 기억이 새롭다.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 반유대주의)을 설명하는 부분이 웬만한 단편소설 분량이었다. 무지 더웠던 그 해 여름, 그 부분을 읽을가 하도 지겹고 짜증이 나 책을 아파트 창문으로 내다 던져버리려 했다. ‘장편 소설’, 그러니까 손바닥 소설은 그럴 염려는 없다. 쓸데 없는 서술이 없다. 그러나 간략한 문장이지만 긴 여운을 준다.

어줍잖게 소설을 쓰보고 싶다는 생각에 달겨들었다가 좌절만 맛 보았다. 아직도 좌절 중이다. 야스나리의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뭔가 훤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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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2월 10일 at 4:31 오후

    야스나리, 이즈지방을 여행하면 그의 행적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많더라구요.
    슈젠지 온천마을은 만년의 그가 정양을 했던
    곳이라고 그의 일대기가 장식된 골목도
    있고 이즈의 무희에 등장한 죠렌폭포 부근에는
    이즈의 무희 테마공원도 있었어요.
    아마 그가 지나갔던 곳,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곳은 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지요.
    이분의 책 많이 읽었는데 장편은 못 읽어봤어요.
    짧게 쓰는게 더 힘들수도 있는데 한번 구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 koyang4283

      2017년 2월 12일 at 5:09 오후

      ‘문학과 지성사’에서 2010년 발간되었는데, 아마도 절판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국회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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