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산시장 ‘수구레’ 집

간혹 먹거리나 맛집에 관한 글을 쓴다. 반응이 괜찮아 쓰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속 들여다보이는 짓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속 보이는 짓, 그러니까 말하자면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하는 점에서다.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상호는 되도록이면 뺀다. 그래도 혹여 그런 점을 드러내고 있을까, 쓰면서도 조심스럽다.

얼마 전 여기 블로그에 일산시장의 ‘수구레’ 파는 집을 소개한 바 있다. 그 집을 소개한 건 순전히 수구레 탓이다. 어릴 적 배고픈 시절 먹어 본 추억의 먹거리라, 우연히 일산시장에 들렀다 접하게 된 게 반가워서 그 글을 썼다. 글이 나가고 반응은 그저 그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수구레를 잘 모른다. 소가죽을 먹는다 하면 기겁을 할 것이다. 그나마 수구레를 아는 나이 드신 몇몇 분이 좀 관심을 갖고 물어오기는 했다. 수구레를 소가죽으로, 너무 단정적으로 규정하는 건 잘못됐다는 항의아닌 항의도 있었던 게 기억난다.

어제가 일산 오일장이다. 갈 일이 있었다. 토마토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그 시장이다. 그리고 마침 한 고향친구가 수구레 얘기를 하면서 같이 가 소주나 한 잔하자고 한다. 수구레 글 쓴지 달포나 지났다. 그 때 가보고 오랜 만이다. 간 김에 그 식당의 원 주인인 할머니나 한번 뵈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오시지 않았고, 전에 처럼 따님 혼자 장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좀 늦어 혼자서 먼저 가게를 들어서는데, 따님인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한다. 아시겠느냐 물었더니, 한켠의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여기에 앉았던, 왜 그 키크고 목소리 큰 후배와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아는 체를 하니 반갑다. 수구레를 소주 한 병과 함께 시켰다. 안 쪽 테이블에 한 가족이 수구레를 먹고 있었다. 수구레가 나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구레와 소 허파 조린 것’이다. 메뉴에는 ‘소 허파와 수구레’라고 적혀있다. 이것을 ‘조림’으로 소개했는데, ‘무침’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림이다. 무침과의 차이는 국물의 유무다. 무침은 국물이 없다. 그러나 조림은, 적지만 국물이 있고, 그 국물로 수구레와 소허파를 맛 나게 조리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수구레를 테이블에 내 오면서 자꾸 나를 보고 웃는다. 웬일일까. 아주머니가 또 한번 웃길래 왜 그러시냐는 눈길을 담아 쳐다 보았다. 아주머니가 물었다. “혹시 저희 집 글 쓰신 분 아니신지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골시장의 구석진 식당에서 장사하느라 여념이 없을 분이 어떻게 그 글을 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담은 눈길이 읽혀졌나 보다. “봤지요. 인터넷에서” 한다. 아주머니는 인터넷을 잘 다루는 눈치다. 그 시골식당에 와이파이가 뜬다는 사실 하나로도 그렇다. 아주머니는 내가 처음 왔을 당시 후배와 나눈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억에는 없지만 그 때 내가 수구레을 우적우적 씹으며 후배에게 글 운운하는 투로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글을 써 올렸고, 그 얼마 후 몇몇 분이 식당에 와서는 내 글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내 글이 있어 읽었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다. 시골의 이런 구석진 식당, 그리고 무엇보다 수구레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좀 늦게 온 친구도 수구레를 아주 맛 있게 먹는다. 소주는 이미 두 병째를 넘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녹두전과 닭똥집도 시켰다. 우리의 화제는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음식과 그 맛에 얽힌 여러 추억 얘기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외로 보이는 한 손님이 들어왔다. 우리 테이블을 지나치면서 힐끗 수구레에 눈길을 준다. “저게 수구레인 것 같은데…” 남자 분이 아내되는 분께 하는 소리다. 내가 한 소리 했다. “예, 수구렙니다. 맛 있습니다.” 그 테이블에서도 수구레를 시켰다. 얼마 있으니 양미리도 시키고 북어찜도 시켰다.

밖이 어둑해질 무렵 일어섰다. 계산을 놓고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 결국 친구가 하려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뭔가를 싼 보따리를 하나 갖고 온다. 그리고는 나에게 안긴다. “이기 뭡니까?” “제 성의입니다. 수구레 좀 담았습니다.” 결국 나는 글값으로 수구레를 받은 셈이 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보다는 저 친구에게 줬으면 합니다. 혼자 사니까요.” 아주머니는 쌩긋이 웃으며 보따리를 친구에게 안겼다.

오늘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잘 먹었다. 고맙다.” 수구레와 그 아주머니 덕분에 친구로부터 황송한 덕담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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