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 대한 한 기억의 글

(탄핵재판 박근혜 측 대리인 중에 이 동흡이라는 변호사가 나름 한 몫을 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은 듯 해 예전에 쓴글을 뒤져보았는데, 알고보니 그 양반이었다.)

 

조선 초기 문신으로 태조로부터 세종에 이르는 네 임금을 모신 인재(寅齋) 申 개(평두레 개; 旣아래에 木자) 선생은 조선이 개국하면서 개국신하, 시쳇말로 새 정부 공직자들의 올바른 면모로 그 이름과 성에 향기가 나도록 처신하고 일할 것을 기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詩를 남겼다. ‘시대 구하느라 애가 다시 탔는데 (濟時腸更熱)/법 만드니 정치는 오직 밝기만 (作法政惟凉)/북궐에 행차하여 가까이 뵈니 (北闕行看近)/길이 남을 성과 이름 향기롭구나 (長留姓名香).’ 어떻게 해야 공직자로서 이름 석 자에서 향기를 내게 할 수 있을까. 선생은 일생에 걸친 나라 일에의 봉직을 통해 그 향기를 풍기고 있다.

선생은 태종으로부터 “신 개는 간신(諫臣)의 풍도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하로서 청렴결백하고 강직했으며 애민정신이 높았다. 실록을 보려는 태조에 대해 불가함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려 그만두게 하는 등 아무리 임금이라도 잘못된 일을 보면 서스럼 없이 나서 올바르게 인도했다. 충청관찰사로 있을 때는 무고한 사형수의 누명을 벗겨주었고, 황해관찰사 때는 궁핍한 백성을 구휼해 백성들의 칭송이 높았다.

박근혜 새 정부의 라인업 인선작업이 대충 마무리 됐다. 그러나 총리 등 지명후보자들에서 드러난, 혹은 드러나고 있는 여러 볼썽사나운 면모 때문에 새 정부의 인선 작업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어쩌면 그리도 우리나라의 지도급 인사라는 사람들이 그 모양인지, 정말 公人 의식을 가진 인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허탈하다. 국민들의 허탈감 속에는 같은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부류의 사람들과의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총리 후보자 인선과정에서 ‘보통사람’이란 말이 나왔다. 그 후보자의 워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부족한 게 많고 화려한 경력을 가진 것도 아닌 보통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 물어보자. 그 사람이 신고한 재산은 20억 원에 가깝고 예금도 수억 원이다. 20억 재산에 수억 원을 은행에 넣고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과연 ‘보통사람’이라면, 거의 대다수가 그 아래인 국민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를 보면 더 기가 찬다. 끝까지 버티다 포화 같은 국민여론으로 결국 사퇴한 이 사람의 사퇴 전 항변도 그대로 옮겨보자.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모욕적으로 당하는 것은 인격살인이다. 명예회복이 중요하다”고 했다. 법조계 출신의 이 사람은 청문회 과정에서 ‘백화점식 비리의 전형’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그 비리들을 일일이 다시 열거하기조차 부끄럽다. 그러면서도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라면, 그에 무슨 대꾸를 해줄 수 있을까. 국민들이 ‘흡사마’라는 애칭(?)을 붙였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여기저기서 돈을 빨아댄 것을 비꼰 것이다.

여러 요직의 그 밖의 후보자 면면도 과다의 문제이지, 이들과 질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물론 국민여론의 질시에 분하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별 문제가 아니었는데 수 십 년 지나 문제가 되는 것, 혹은 남들도 다들 그렇게 했는데 나만 갖고 문제 삼는다는 것, 그리고 특정 이념계층의 과장되고 조작된 조직적 공격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건 본말의 전도일 뿐이다.

그들은 똑똑한 머리를 바탕으로 돈과 지위와 권력을 모자람 없이 누렸다. 그러면 그 것으로 종(終)을 찍을 일이다. 그에 더해 마지막까지 한 자리 챙기려는 그 의식, 그리고 그에 대한 국민여론의 질타가 그 본질임을 그들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은 자리를 꽤 찰 것이다. 공인, 특히 국민과 나라를 염두에 둔 공직자로서의 소명과 역사의식을 부디 견지하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아울러 향기는 나지 않을지언정 최소한 이름 석 자에 악취는 풍기지 않는 공직자가 되기를 바란다.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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