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촌들 가운데 늦게 그림에 눈이 트인 형이 한 분 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수년 전부터 이따금씩 SNS 등을 통해 접해보는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얘기했듯 그림에는 과문한지라 그냥 대수롭잖게 여겨왔다. 그래도 그 수준에서 처음 형의 그림을 보고 느낀 것은 기존의 작품을 베끼는 ‘모사(模寫)’ 수준의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사라도 썩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데, 형이 이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 대구에서 집안 일로 형을 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다 형의 그림을 접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림이다. 화면이 적어 디테일하게는 볼 수 없었지만, 한 눈에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림은 일종의 종교화다.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다. 나중에 듣기로, 이 그림은 형의 둘째 아들이 뉴욕 카네기 홀의 한 찬양연주회 때 어떤 누나뻘 되는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을 찍어 형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쉐카이나 영광'(이 낙천 畵) Oil on Canvas
이 그림을 처음 보고 퍼뜩 느껴져 온 것은 빛이다. 교회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휘뿌연 엷은 햇살이, 검은 옷을 입은 여자의 기도 드리는 모습에 어우러져 아늑함, 혹은 신비감을 자아내도록 한 빛의 묘사가 좋았다. 그 빛의 처리가 이 그림에 아늑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생각이다. 문외한의 생각이지만 그림에 있어 빛의 처리는 중요하다. 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은 그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아닌가.
형의 그 그림에서 연상되어지는 그림이 있다. 15세기 프랑스의 종교화가 조르쥬 드 라 투르의 ‘막달레나’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 중의 하나인 ‘등불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The Penitent Magdalen with Night Light)’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다. 이 그림의 백미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견지로는 역시 빛의 처리다. 어둠과 빛을 절묘하게 결합함으로써, 막달레나의 예수를 향한 신심의 깊이를 한층 더 깊게 하고 있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내적 성찰을 유도하는 그림이다.
‘등불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The Penitent Magdalen with Night Light)(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나의 이런 말 같지(?) 않은 평가에 형이 좀 고무되었나 보다. 형은 또 다른 그림을 보내왔다. 교회 전시회 때 준비했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역시 빛의 처리가 돋보이는 그림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그림이다. 언제 시간나면 실물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만성, 대기만성하는데, 형의 이런 노년의 모습에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형의 호도 ‘만성’이다. 대기만성의 그 만성은 아닌 것 같지만. 형은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의 1.5세대 쯤 된다. 내로라하는 기업의 임원도 거쳤다. 그러나 10여년 전 쯤 홀연히 모든 것을 접고 경북 영천 땅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내 인생에 가장 잘 한 선택은 모든 것을 접고 내려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보고 듣기에 후회없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다.
koyang4283 (
김동일 (
데레사
2017년 3월 2일 at 3:56 오후
참 잘 선택하셨네요.
나이들어 모든 욕심 다 내려놓고 하고 싶은일
하면서 사는게 제일 행복한 일이지요.
koyang4283
2017년 3월 4일 at 5:48 오후
저도 참 부러웠습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나타날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숨겨진 재능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참나무.
2017년 3월 3일 at 3:42 오후
외사촌되시는분께 인문학적 사고가 충만한 감상자 역활을 잘 하셔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탄생되리라 믿습니다.
원화를 보실수 있는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빛을 잘 표현한 베르메르도 같이 떠오르는 작품이네요
류가헌은 다녀오셨는지요
멋진 리뷰 고맙게 잘읽었습니다
koyang4283
2017년 3월 4일 at 5:46 오후
형은 뉴질랜드를 오가며 작품활동과 소일을 하고 있는데, 작품들은 주로 뉴질랜드에 있다고 합니다. 영천에도 몇몇 작품들이 있다고 하니 한번 내려가볼 예정입니다. 형에게 블로그 글 얘기를 했더니 무척 기뻐했습니다.
류가헌은 아쉽지만 다녀오질 못했습니다. 26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대구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그곳을 다녀오느라 못 들린 것이지요. 마지막 날 자원봉사를 하신 분이 제 외사촌 제수입니다. 조용미 시인이죠. 외사촌 동생과 대구를 함께 내려가다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오규원 시인은 잘 모릅니다만, 부인되시는 김옥영 여사와는 면이 좀 있습니다. 마산 출신으로 저와는 70학번 동기고, 지난 핸가, 을지로에서 한번 뵌 적이 있지요.
김 수남
2017년 3월 4일 at 8:22 오전
참 아름다운 그림이네요.담아 주신 마음이 잔잔히 전해옵니다.항상 좋은 글 나눠주심을 감사합니다.
koyang4283
2017년 3월 4일 at 5:49 오후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