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맞이 북한산 걷기

경칩을 하루 앞둔 북한산은 봄의 산이다. 불어오는 산 바람에 상큼한 봄 내음이 묻어난다. 산길 곳곳은 해동의 짖궂은 질척거림이긴 해도, 발길에서 느껴지는 건 봄날의 속삭임이다. 느릿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나 할까, 북한산은 막 겨울 잠에서 깨어나 여유로운 봄 단장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탄핵이 어떻고 특검이 어떻고 해도 계절은 어김없는 봄이다.
이런 봄날, 북한산은 걷기에 좋다. 오르는 것도 물론 좋지만, 좀 여유롭게, 인문학적 생각으로 북한산을 대하고 느끼기엔 걷기가 좋다.
불광동에서 걸었다. 지하철 2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너 구기터널 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면 둘레길 입구가 나온다. 그 둘레길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곳에서 걸어 탕춘대문까지의 산길이 참 좋다. 평탄할 뿐더러 왼편으로 백운대를 계속 조망하고 걸을 수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 초입에서 좀 오른다. 어제 마신 술 탓인가, 숨이 찬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숨이 차면 쉬어가면 된다.
나이가 들었다. 그러니 그에 맞게 오르고 걸어야 한다. 젊었을 적에는 산행도 일종의 ‘경쟁’이었다. 상대가 있는 경쟁이 있을 수도 있고 나 자신과의 경쟁도 있었다. 자신과의 경쟁은 실적, 이를테면 어느 높이의 산을 얼마나 길게, 그리고 얼마나 단 시간에 올랐던가 하는 것으로 겨뤘다. 그러니 참 무모한 산행도 많았다. 설악산 서북릉 종주에 나서서는 24시간을 꼬박 오르고 걸은 적도 있다. 설악산 어느 하산 길, 수렴동 대피소에서 소주 너댓 병을 마시고 용대리로 나오다, 어느 길에선가 나도 모르게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소낙비가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깨어나 용대리, 서울가는 막차 시간에 맞추려 뛰기도 했다. 그 때는 체력이 참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몸이 많이 사그라 들었다.
탕춘대문까지는 넉넉 잡아 한 40분이면 족하다. 이곳에서 결정해야 한다. 더 걸어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오르다 샛길로 빠져 구기동으로 내려갈 것인가. 어쨌든 좀 더 올라가야 한다. 그냥 내려가면 상명대 쪽인데, 교통편이 불편하다. 탕춘대문에서 옛 매표소까지 올라가는 산길도 좋다.
구기동으로 빠지는 샛길을 지나친다. 계속 오르기로 마음을 잡은 것이다. 게으름이 솔솔 피어났지만, 한편으로 이런 봄날, 언제 또 이렇게 혼자 호젓이 걸어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동한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나 혼자만의 인문학적 산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러 생각과 상상으로 점철되는. 마침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음악은 3개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포금정사터를 지나 비봉능선에 붙기까지의 산행은 힘이 좀 들지만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이 코스로 갈 때면 음악을 좀 활기찬 것으로 바꿔 듣는다. 모짤트의 ‘마술피리’도 즐겨듣는 것 중의 하나다. 그 오페라의 신나는 아리아 몇 곡을 들으며 오르노라면, 산을 오르는 느낌이 흡사 부드러운 산길을 걸어가는 듯 하면서 뭔가 희망이 솓구쳐 오르기도 한다.
비봉능선에서 사모바위 쪽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겨울이다. 그저께 온 눈 때문에 눈이 얼어붙은 얼음길이다. 비봉 아래로 해서 승가사 갈림골로 내려가는 길은 매년 겨울에 그랬듯이 미끄럽다. 주변 눈치 볼 필요 없다. 두 발과 두 손으로 내려가야 한다. 언젠가 한번 미끄러져 곤란에 처해본 적이 있는 길이기에 항상 신경이 쓰이는 길이다. 그 지역만 지나면 다시 봄 산길이다.
오늘은 사모바위까지다. 승가사로 내려가면 된다. 그 길은 눈 감고도 내려갈 수 있는 익숙한 산길이다. 다시 차이콥스키 교향곡이다. 교향곡 2번 끝날 때쯤이면 구기동에 도착할 것이다.
생각대로 맞았다. 구기동 러시아대사관 앞에 도착했을 때 2번이 끝났다. 산행을 끝냈기에 3번을 들을 필요는 없다. 산행에 스마트폰이 참 요긴하다. 음악도 그렇고, 요즘에는 팟개스트를 다운로드 받아 들으며 걷기도 한다. 다양하다. 시사적인 것에서 문확, 역사 등에 관한 것을 골라서 들을 수 있다.
근자에 산행과 걷기에 좋은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잘 이용하고 있다. 여러 운동에 관한 기록을 실시간 개념으로 알려주는 앱이다. 지난 1일 일산 호수공원에 처음 사용해봤는데, 정확도는 잘 모르겠지만, 기록성은 뛰어 났다. 오늘 북한산 걷기에도 그 앱을 가동시켰다. 결과가 기록으로 나왔다. 총 산행길이가 8.4km로, 시간은 2시간 49분 소요된 것으로 나온다. 지난 번 호수공원 걷기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거리라해도 산길을 걷는 것은 평탄한 길을 걷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설악산 대청봉 최단 코스인 오색약수에서 대청봉까지의 거리가 4km 정도다. 그러니 산길 8km를 걸었다면 많이 걸은 것이다. 나대로의 평가가 그렇다.
구기동에서는 항상 갈등이다. 서울에서 물이 제일 좋다는 ‘쉐레이 사우나’에서 샤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그렇고, ‘삼각산’ 아니면 ‘장모집’에서 소주 한 잔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그렇다. 오늘은 그 갈등을 질끈 동여맸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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