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치면 1950년대는 ‘서부극’의 시대였다. 올드 팬들에게는 추억의 한 장으로 남아있을 서부극도 따지고 보면 한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적으로 한국전쟁이 치러진 후 미국과 소련과의 ‘냉전’이 극에 이른 상황에서 내 편과 저 편을 가르는 것이 보편화됐고, 이게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현상이 만연하면서 영화에도 영향을 끼친다. 서부극은 선한 총잡이가 악당을 무찌르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나온 서부극의 영화들, 이를테면 ‘하이 눈’(1952), ‘세인’(1953, ‘론 레인저’(1956), ‘OK 목장의 결투’(1957)을 뒤돌아 추억해보면 모두가 그런 내용들이다.
이런, 어찌 보면 좀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서부극에 좀 식상해 했을 성 싶다. 그런 기미가 있을 무렵에 나온 영화가 1954년에 만들어진 ‘레드 가터즈(Red Garters)’다. 이 영화도 물론 서부극이다. 하지만 영화의 포맷은 극영화가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게 좀 독특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특히 서부극을 시니컬하게 패러디한 뮤지컬이라는 점이, 정통 서부극에 식상해있던 팬들을 어떤 측면에서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에 나온 일련의 ‘마카로니 웨스턴’ 서부극 영화들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레드 가터즈’의 가터(garter)는 말을 타고 내릴 때 이용되는, 말에 달린 장비다.
아무튼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조지 마셜이 연출을 맡았고, 당대를 풍미하던 로즈마리 클루니와 잭 카슨, 가이 미첼 등이 출연해 인기몰이를 했다. 이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영화도 그렇지만, 주제가 또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바로 영화에서 케이트 역으로 출연한 로즈마리 클루니가 사운드 트랙으로 부른 ‘브레이브 맨(Brave Man)’이다. 언뜻 총잡이들의 용감성과 애환이 느껴지는 노래로 보이지만, 서부극을 패러디한 영화의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노래는 듣기에 좀 구슬프다. 특히 “goodbye Jane, goodbye Joe’가 구슬프게 반복되는 구절의 멜로디는 로즈마리를 그리는 올드 팬들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을 것이다.
로즈마리 클루니라는 이름에서 어떤 사람이 연상될 것이다. 바로 할리우드의 미남배우 조지 클루니 아닌가. 조지의 고모가 바로 로즈마리다. 로즈마리는 2002년 74세로 세상을 떴다. 죽기 전까지도 로즈마리는 아름다운 미모와 풍만한 몸매를 유지했다.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추억이 있다. 십여 년 전, 언론계 선배 한 분이 重(?)한 부탁을 했다. 흘러간 것들에 상당히 집착해하는 선배였는데, 로즈마리 클루니의 SP나 도넛츠 판을 구할 수 없겠는가 하는 부탁이다. 그 중에서도 ‘Brave Man’이 꼭 들어가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 황학동도 가보고 회현동 지하 레코드가계를 다 뒤져도 못 구했다는 것이다. 알아보겠다 하고는 내심 이베이(eBay)에 기대를 걸었다. 한 일주일 파고들었더니 걸려들었다. 양면에 2곡이 수록된 도넛츠 판인데, ‘브레이브 맨’이 있었다. 송료까지 해서 11달러쯤 들었을 것이다. 선배한테는 알리지 않고 있다가, 그 도넛츠 판이 도착한 날 내밀었다. 그 때, 그 선배의 감격해하는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덕분에 술 한 잔 잘 얻어 마셨다. 그 선배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이미 고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엊저녁, 우연히 로즈마리 클루니의 ‘브레이브 맨’을 다시 듣게 됐다. 문득 그 영화와 로즈마리 클루니가 생각나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