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호수공원까지 걷기.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10여년 전에는 2주에 한 번 정도로 자주 걸어 다녔었다. 거리상으로는 한 6-7km 쯤 될 것인데, 호수공원까지의 차도를 벗어난 길의 풍광이 좋았다. 옛 시골 길의 정취가 그나마 좀 남아 있어서 좋았고, 또 산을 가지 않는 날의 체력적 보완으로도 거리상 알맞었기에 택한 길이기도 했다.
오늘, 문득 이 길이 생각난 것은 좀 예외적이다. 마산을 다녀오느라 좀 피곤하긴 했어도 주말의 산행이나 걷기가 거의 생활화된 만큼 무작정 집을 나섰지만, 미세먼지 예보가 좀 걸려 동네 산책 정도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우려할 정도의 미세먼지는 아니다. 그럼 호수공원으로 가자고 대곡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문득 옛 그 길이 떠오른 것이다. 그 옛길의 풍광 가운데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감리교회의 정감있는 첨탑이었다. 갑자기 그 첨탑이 보고 싶어졌고, 그래서 그 쪽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그 길을 들어서는 입구는 좀 복잡하다.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 초입에 교회가 있었는데, 많이 변했다. 길을 좀 걸어 들어가면 교회 입구가 나타났는데, 차도 한 편을 출입문으로 해 들어갈 수 있었다. 교회 첨탑도 옛 것이 아니었다. 무슨 장치들이 설치됐을 것 같은 현대식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그 첨탑 아래에 서 있고 싶어 일부러 교회까지 들어가곤 했었는데, 그 마음이 사라졌다. 길을 좀 걸어가니 왼편으로 재생물품을 취급하는 야적장 같은 게 나온다. 사람은 없고 개들만 컹컹대고 있는 게 삭막해 보인다. 입구로 보이는 길 한 켠에 옛 고물 시계가 하나 걸려있다. 시계 침은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는데, 물론 고장난 것이다. 시계판에는 런던의 켄싱턴 역이라고 적혀있다. 오리지널은 물론 아닐 것이지만, 나름 고물상 주인의 취향을 짐작케 한다.
오랜 만에 걸으니 길을 잘 모르겠다. 호수공원으로 가자면 긴 직선 길이 있었다. 그 길을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소 키우는 농장을 지나간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소 농장은 예전보다 작아진 것 같다. 예전 그 농장 곁을 지나칠라면 수 십마리의 소가 나 하나 만을 지켜보는 것 같아 무슨 죄지은 사람마냥 좀 두렵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겨우 몇 마리만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낼 뿐이다.
호수공원은 날씨 탓인지 한가롭다. 메타세콰이어 길 쪽을 택했는데, 그 길은 더욱 그렇다. 청명하지 않은 대기 속에서 메타베콰이어 나무들도 회색 빛이다. 자연 호수 쪽으로 오니까 그런대로 초록 빛을 볼 수 있다. 물빛도 그렇고 수목도 그렇다. 자연의 색은 역시 초록이 좋다. 그 쪽 부근을 반복해 걸었다. 야생화가 있는 정원 입구는 무슨 공사 때문인지 못 들어가게 해 놓았다. 다시 뒤돌아가 뒤 편에서 들어갔다. 야생화야 지금은 그리 볼 것도 많지 않다. 그 쪽에서 자연 호수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호수는 연꽃이 좋다. 매년 연꽃을 보러 오기도 한다. 아직은 꽃 피울 시절이 아니지만, 무리지어 물 위로 그 기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여기 쯤해서 보니 10여 킬로미터를 걸었다. 팔각정으로 걸어가 좀 않아 쉰다. 아침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느긋한 가운데 배가 고파온다. 뭘 먹어도 맛 있을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햄버거 하나 먹고 롯데 시네마에서 영화구경이나 할까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이 또한 전에 없던 생각이다. 어찌하든 이번 주는 이 걷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데레사
2017년 3월 19일 at 6:06 오후
고목에 걸린 고장난 기계가 재미 있네요.
걷는일은 언제 어디서나 다 좋지요.
저는 이제 한시간 정도밖에 못걸으니까
부럽습니다. ㅎ
호수공원에 연꽃피면 구경 한번 가야겠습니다.
koyang4283
2017년 3월 20일 at 3:40 오전
언제든 오시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