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좀 얍삽해졌다. 술 마시는데 대해 생각이 좀 많아졌다는 얘기도 된다. 몸도 예전 같지 않다. 마시면 몸과 정신에 축적되는 여러가지 느낌이 전해 비해 무겁다. 나도 모르게 많이 마시다가 쓰러질 것 같은 예감이 들 때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도 부담스럽다. 술이 들어가면 계산에 둔감해지는 버릇은 여전한데, 돈은 예전만도 못한 처지아닌가. 술을 이렇게 마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드는 것이다.
둔한 머리는 어쩔 수 없다. 나름의 술에 대한 얍삽스러움은 이런 것이다. 손해보지 말고 마시자는 것. 이를테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더라도 좀 공평하게 마시자는 게 우선 그 중의 하나이다. 여럿이들 마시든 아니면 단 둘이 마시든 항상 많이 마신다. 다들 같이 마시는데 왜 나만 그리 많이 마시는가. 알콜 중독자가 아닌 바에야, 어차피 몸에 좋지 않은 술이라면 나만 손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공평하게 마실 대상을 골라 마시자는 것인데, 예컨대 나랑 주량이 엇 비슷한 지인들과 마시면 덜 억울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먹게된 지 한 십여 일 된다. 그러다보니 그 사이 술 자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누가 주선하는 술 자리든 앞에서 얘기한 그런 정황을 우선 따져보게 된다. 좀 유치하지만 산술적인 계산도 해 본다. 예컨대 소주를 마시게 될 것 같으면, 미리 병 수를 정해 사람 수에 나눠 공평하게 마시자는 제안부터 먼저 해 보기도 한다. 잘 먹혀들리가 없다. 잔 돌리기에 앞서 미친 놈이라는 소리도 나올만 하지 않은가.
나름 그런 마음을 굳혀 가고있지만, 실행이 문제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의 북한산 산행에서 한 번 써 먹었다. 모두 여섯 명이다. 구기동 해장국집에 앉아서들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친구들이니 그들의 주량은 내 머리 속에 익히 자리잡고 있다. 소주는 누가 마시는가, 막걸리는 누가 마시는가가 정해진다. 나는 물론 소주라 첫 잔부터 설치는 건 나지만, 그렇다고 야박하게 잔으로 공평을 들이댈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은 병으로 계산되는데, 그 자리에서는 모두 두 병을 마셨다. 소주는 세 명이 마셨다. 내가 얼추 한 병 이상을 마셨다. 손해 본 것이다. 심기가 좀 뒤틀려지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 나오니 목욕을 하니 마니들 한다. 중국집에서 배갈을 마셨으면 좋겠다는 친구가 있어서 내가 먼저 가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집은 장소를 옮겨 신장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친구들 목욕 끝내기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려준 것은 좀 취기가 오른 탓이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의 술에 대한 그 얍삽스러움이 슬슬 피워오르고 있었다. 이 친구들하고 가봤자 결국은 나 혼자만 억수로 마실 것이다. 나만 손해 아닌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집에 가겠다 했다. 그리고는 후딱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 속심을 모르는 그 친구들은 나의 그런 결단을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한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불광시장 순대국 집에 앉아들 있었다. 다섯 명이 달랑 막걸리 한 병을 시켜 놓은 채로.
매일 매일이 고비다. 어제는 중학교 동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얍삼함을 가동시켰다. 가 봐야 또 나만 엉망으로 마실 자리니 가지 않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아침 일찍 국회도서관을 택한 것도 그의 일환이다. ‘호메로스’를 읽고 있었다. 오디세우스, 이타카, 페넬로페, 칼립소, 헥토르, 키요스… 수 천년 전의 이런 이름들이 머리에 가득 차오르면서 슬슬 술이 당겨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좀 공평하지 않더라도 그냥 동창회에 가서 마셔 버릴까.
국회의사당 전철역. 갈림길이다. 한 쪽을 타면 당산동으로 해서 DMC역에서 경의선을 타면 집으로 간다. 또 한 쪽은 고속터미널로 가는 방향이다. 거기서 한 정거장이면 약속장소인 교대 역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때 전화 벨이 울렸다. 지리산에 있는 친구다. 서울 올라 와 교대 역이라고 한다. 나더러 우짜라는 말인가. 전화 벨이 울렸을 때 내 마음은 이미 동창회로 기울어지고 있었다는 걸 잘 안다. 울고 싶은 놈 뺨 한 대 때려준 격 아닌가.
나의 철딱서니 없는 술에 대한 이런 류의 얍삽스러움이 얼마나 허술하고 허망한 것인지 잘 안다. 지리산 친구에게서 모처럼 맡아보는 지리산 산 내음에 끽 소리도 못 내고 사그라질 그런 얍삽함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의 발걸음은 이미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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