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무슨 일을 하든 조바심이 많다. 아니 많아졌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일을 하다 주의심이 부족해 여럿 낭패 본 경험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생각해 보아도 전에 없던 일이다. 일에 조바심이 많다는 것을 나 스스로 나무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에 대한 조바심은 다른 말로 신중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레 어떨까 하는, 그러니까 일을 하면서도 잘 안 되는 쪽으로 결말이 날 것으로 예측을 하면서 스스로 시름에 젖을 필요는 없는 일 아닌가.
학교 선배가 하시는 일을 돕고 있다. 선배가 맡긴 일이다. 잘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맡았다. 나름 잘 준비하고 대처해 왔다. 그런데 마무리 지어야 할 막판에서 삐걱대고 있다. 지방 어느 기관의 ‘역사서’를 공동으로 집필하는 일인데, 나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기존과 신규 자료를 취합하고 전문가의 견해를 보태 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에 나온 텍스트가 주요 참고 자료라, 그것을 바탕으로 별 무리없이 진행해 왔다. 기존의 것은 잘 정리가 됐다. 여기에 현황만 끼워 넣으면 끝날 일이다. 문제는 현황에 대한 것인데, 이게 막판에 어렵게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기관의 해당 부서와 소통하면 쉽게 구할 줄로 알았던게 오산이었다. 근 한달을 기다려도 자료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내가 맡은 일 전체가 어그르지게 된다.
그런 생각은 안 그래도 ‘증세’가 심한 조바심에 기름을 을 붓는 격이다. 그 기관과의 연락을 맡고있는 분을 닥달할 수밖에 없다. 그 분도 노력을 했다. 그러나 얻어지는 게 없다. 자료가 없다면 트렌드라도 읽을 수 있게 해 줬으면 하는데 그것도 안 된다. 조바심은 결국 나 때문에 전체적인 일에 차질을 주면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으로 이어진다. 연락을 맡고있는 분이 결국 나의 이런 조바심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전화도 잘 받질 않는다. 나는 결국 이런 생각을 한다.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 조치라는 것은 결국 기술적인 편법이다. 어떻게든 마무리는 잘 지어야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서다.
학교 선배가 하시는 일을 돕고 있다. 선배가 맡긴 일이다. 잘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맡았다. 나름 잘 준비하고 대처해 왔다. 그런데 마무리 지어야 할 막판에서 삐걱대고 있다. 지방 어느 기관의 ‘역사서’를 공동으로 집필하는 일인데, 나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기존과 신규 자료를 취합하고 전문가의 견해를 보태 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에 나온 텍스트가 주요 참고 자료라, 그것을 바탕으로 별 무리없이 진행해 왔다. 기존의 것은 잘 정리가 됐다. 여기에 현황만 끼워 넣으면 끝날 일이다. 문제는 현황에 대한 것인데, 이게 막판에 어렵게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기관의 해당 부서와 소통하면 쉽게 구할 줄로 알았던게 오산이었다. 근 한달을 기다려도 자료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내가 맡은 일 전체가 어그르지게 된다.
그런 생각은 안 그래도 ‘증세’가 심한 조바심에 기름을 을 붓는 격이다. 그 기관과의 연락을 맡고있는 분을 닥달할 수밖에 없다. 그 분도 노력을 했다. 그러나 얻어지는 게 없다. 자료가 없다면 트렌드라도 읽을 수 있게 해 줬으면 하는데 그것도 안 된다. 조바심은 결국 나 때문에 전체적인 일에 차질을 주면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으로 이어진다. 연락을 맡고있는 분이 결국 나의 이런 조바심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전화도 잘 받질 않는다. 나는 결국 이런 생각을 한다.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 조치라는 것은 결국 기술적인 편법이다. 어떻게든 마무리는 잘 지어야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서다.
일에 대한 나의 버릇같은 이런 조바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단할 수 없다. 이것 또한 조바심이고 걱정스럽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동안 해 온 일의 결과물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잘 끝내게 될 것 같은, 그러니 뜬금없이 드는 이런 조바심이 말하자면 쓸데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문득 드는 것이다. 이러니 이게 일에 대한 버릇같은 증세가 아니겠는가
유럽 쪽의 유명 온라인 경매업체와 연이 닿았다. 몇 건의 거래가 성사됐다. 이 업체는 결재 부분이 이베이(eBay)와 다르다. 이베이는 자회사인 별도의 결재회사(PayPal)을 통해 결재가 이뤄진다. 근데 유럽의 이 업체는 은행의 송금(wire transfer)가 결재수단이다. 수수료를 제하고 얼마간의 금액을 국내의 내 은행구좌로 보냈다는 메일을 받았다. 은행 외화송금은 십 여년 전에 해 본 경험이 있는데, 그 때와는 좀 달랐다. 외화통장 없이, 그냥 입출금 통장되도 입금이 되게 돼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좀 복잡하다. 통장 개설 은행으로 송금 확인이 되면, 그 은행에서 별도로 통지를 해 주는 등의 과정을 거쳐 내 통장에 입금이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그 은행 본점과 통장 개설 은행에서 확인하느라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첫 송금액은 불과 몇 십 유로의 소액이다. 유럽의 그 업체에서 보낸 인보이스까지 있으면, 그냥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도, 그게 어찌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이 또한 조바심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 잘 하면 유럽 쪽의 그 업체가 어쩌면 나의 노후생활과 관련한 한 원천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그런 조바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하지만 내가 생각해봐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 그렇게 보였으면 은행 담당 여직원이 이런 말까지 했을까.
“몇 번 설명드려야 될까요. 무엇을 듣기 원하세요. 그리고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데레사
2017년 5월 21일 at 4:42 오후
나이탓도 있을거에요.
저도 그 비슷하게 변해 가거든요. ㅎ
koyang4283
2017년 5월 22일 at 7:55 오전
동병상련입니다 ㅎㅎ
koyang4283
2017년 5월 22일 at 7:55 오전
동병상련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