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은 자식
전혀 뜻밖이다. 그 선배가 그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4, 5년은 족히 됐다. 프레스 센터 뒤 쪽 어디 다방에선가 우연히 만난 적이 있은 이래 처음이다. 마산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막상 그 선배의 전화를 받으니, 반갑다기보다 뭔가 좀 미묘하고 어색한 생각이 들었다. 마산의 한 신문사에서 만난 게 40년도 더 됐다. 얼마 간 같이 있었고, 내가 먼저 서울로 올라오고, 그 선배도 서울로 올라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3년 정도 위인 선배다. 영어과를 나와 영어를 잘 했었고, 그래서 나를 다른 견습기자들에 비해 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모양이다. 견습기자 시험의 영어 채점을 그 선배가 했다는 데, 내 점수가 좋았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런 선배다.
인사를 주고받고도, 이 선배가 늦은 시간, 그것도 우연한 일치(?)인 줄은 모르겠지만, 하필 한잔 들이켜 알딸한 상태의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게 좀 의아스러웠다. 선배는 그저 갑자기 내 생각이 났고, 전화번호를 뒤져보니 내 번호가 있어 전화를 한다고 했다. 마산에 와 있다. 그라고 술 한 잔 하고 있소이다라고 하니, 거참 잘 됐네라는 답이 돌아온다. 잘 뙜다라니요? 대답은 ‘우연한 일치’로 대치하는 게 좋겠다.
선배는 어떤 사람에 관한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 사람도 같은 신문사에 있던 선배지만, 나랑은 별로 교분이 없던 사이였다. 오히려 전화를 걸어 온 선배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내가 마산에 와 있다니, 그러면 그 사람에 관한 안부 알기가 더 쉽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알아보려면, 몇 사람을 거치면 알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런 투로 말을 했다. 내 대답을 받는 선배의 말이 좀 건성으로 들렸다. 예전에 알기로도 그런 선배였다. 신문사에서 잘 나갔었기에 좀 도도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말고 식이다. 선배는 그 보다는 정작 다른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그러다 아직도 술을 많이 마시냐고 묻는다. 지금도 마시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우문우답이다. 선배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러더니 불쑥 이런 말을 한다. 내, 그동안 모든 것을 절연하고 살았다. 어느 누구와도 말 하기가 싫었다. 세상이 살기 싫었다. 귀하에게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것은 그 동안 절연하고 살아 온 것에 대한 일종의 미안함 때문이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들렸다. 가만이 듣고만 있었다. 그랬더니 또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자식이 죽었지. 그리고 나도 죽었다. 처음 듣는 소식이다. 연락은 잘 하지 않고 지냈지만, 어느 정도의 소식은 알음알음으로 듣고있던 차에 뜻밖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선배의 얘기는 이랬다. 큰 아이가 백혈병을 앓다가 서른 후반의 나이에 세상를 떴다는 것이고, 그 충격으로 인해 이제껏 은둔 비슷한 생활을 해 왔다는 것이다. 선배의 그 얘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듣고만 있었다. 무슨 말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떤 말을 해야할지 퍼뜩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고작 한 말은 탄식이다. “아이고.” 그 뒤에 선배와 주고받은 얘기는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내 자식들의 나이를 물은 것은 안다. 선배 아들 죽을 때의 그 나이 쯤이다.
선배의 전화를 받고난 후 한동안 멍멍해졌다. 선배가 그 시간, 마산의 주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전화를 해온 것도 그렇거니와, 아무리 근황을 전한다 해도 몇 년이 지난 자식의 죽음을 왜 굳이 나에게 이 시점에서 알리려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참 이상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선배는 나에 대한 뭔가를 알고 전화를 해 온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 숨켜온 그 무엇을, 선배의 그 전화로 인해 불쑥 들켜버린 것이 된다. 아버지로서는 자식에 관한 안 좋은 일은 가슴에만 묻어 놓을 수밖에 없다. 마누라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다.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사람을 좀 이상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이즈음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 웬 술을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많이 마시느냐. 산은 왜 혼자서만 그렇게 줄창 다니느냐 등등. 내가 선배의 전화를 받은 그 시각, 마산의 주점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있는 것도 다 그런 핑계를 달고 있다. 자식에 대한 답답함은 선배나 나나 같은 것이다. 그 답답함이 서로간의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어줬을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한다. 그게 그나마 편할 것 같다.
20151104_07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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