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나물 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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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가면서 모든 게 시들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 내 생각대로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입맛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먹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속된 말로 게걸스러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입맛에 집착하는 정도가 예전 젊었을 적에 비해 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이를 먹으면 입맛이 떨어지는, 말하자면 나이는 입맛에 반비례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어떻게든 더 입맛을 지키려는 것은 자연스런 본능일 수도 있겠다. 하나 더 보태자면 입맛에는 당연히 술맛도 포함된다.

각가지 먹거리가 많고 먹기에도 편리한 세상이다. 그래도 유독 입맛을 당기게 하는 것은 옛날에 먹던 것들이다. 고향의 맛이라 해도 되겠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자랐기로, 아직도 각종 생선을 포함한 해물이 가장 입에 당기는 먹거리다. 해물과 함께 요즘 많이 찾게되는 것은 옛날 어머니가 무쳐 주시던 각종 나물이며 장아찌다. 가죽나물과 장아찌도 그 중 하나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 가죽은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꽤 귀한 식재료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어쩌다 한번 먹게되는 가죽장아찌에 대한 기억은 명료하다. 독특한 맛에 눅진한 식감이 그것이다.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애매하다. 뭐랄까, 쌉살하고 덜적지근하면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맛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이름 그대로 가죽처럼 묵직하면서도 독특한 맛을 낸다. 죽참나무 줄기와 입사귀를 왜 가죽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먹어보면 왜 가죽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지난 5월 초, 지리산 여행길에 거창엘 들렀다. 선배 지인의 안내로 어떤 식당엘 들렀는데, 거기서 가죽 맛을 오랜만에 보았다. 고기집이었는데, 각종 채소를 비롯해 더덕과 도라지 등을 풍성하게 내 놓는 집이었다. 그 가운데 가죽이 있었다.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가죽을 쌈으로 내 놓는 것이다. 각종 채소에 싱싱한 가죽을 보태 구수한 촌 된장으로 고기를 싸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선배 지인이 갖고 온 하수오 술이 그날의 하일라이트였지만, 나로서는 가죽을 아직도 제일로 치고 있다. 그 집 아줌마의 풍성한 인심이 좋아 만원짜리 한 장을 드렸다. 풍성하게 잘 먹은데 대한 보답치고는 보잘 것 없는 돈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돈은 가죽 맛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그 게 ‘화근’이었다. 그 집을 나오는데, 아줌마가 나를 부른다. 일행들은 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부엌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퍼다가 용기에 꾹꾹 눌러 담는다. 가죽장아찌였다. 그 뿐만 아니라 더덕장아찌, 그리고 촌된장에 청양고추를 넣어 담근 고추된장장아찌도 꾹꾹 눌러 담아 나에게 건넸다. 횡재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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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그 식당의 아줌마가 준 그 장아찌들로 이십여 일을 ‘버텼다.’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다. 그 장아찌들은 이제 다 떨어졌다. 가죽장아찌만 한 보시기 정도 남았다. 아껴먹고 있지만, 곧 떨어질 것이다. 얼마 전 마산 간 길에 선배에게 거창의 그 지인 연락처를 좀 알려달라고 했다. 순전히 그 식당의 그 장아찌를 어떻게 좀 조달해 먹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는데, 아직 연락처는 받지 못하고 있다. 좀 기다리면 어떻게 조달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달해 먹는 것도 좋지만, 그와 함께 직접 만들어 먹으면 어떻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가죽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구해보기로 했고 발품을 팔아 결국은 구했다. 일산 오일장에서 구했다. 가죽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바닥을 두어 차례 돌아다니다, 어떤 할머니가 펼쳐놓은 좌판 한쪽 구석에서 가죽을 발견한 것이다. 세 다발에 5천원. 원래 두 다발 5천원인데 좀 시들었다면서 덤으로 한 묶음을 더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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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를 귀찮게 할 생각은 없었다. 네이브에 올라와 있는, 가죽장아찌 담그는 방식 그대로  따라 해 보면 될 것이었다. 잘 하고 못 하고, 맛 있고 맛 없고는 관심 밖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직접 해 먹어보자는 것이다. 가죽을 다듬어 소금물에 담근다. 네이브 레시피 시키는 그대로 5시간 정도를 소금물에 담궈 가죽을 부드럽게 한다. 양념은 고추장, 고추가루, 조청, 국 간장, 매실청 등이다. 다들 준비돼 있다. 절여진 가죽을 씻어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말린다. 그리고 양념장에 잰다. 통깨를 좀 부린다. 그러면 되는 것으로 나와있다. 일단은 잘 말려야 한다.

마누라가 내 하는 짓을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없다. 아침에 잘 말라있는 가죽을 보더니 결국은 부산을 떤다. 양념장을 어느 새 뚝딱 만들고는 버무린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가죽장아찌다. 내 극성스런(?) 입맛에 마누라가 합세해 만든 것이다. 이제 서늘한 곳에 좀 두고 숙성시켰다가 꺼내 먹으면 된다. 일단 색깔은 거창의 그 식당 것과 같다.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하지만 다시 다짐해 본다. 맛에는 개의치 말자. 내 몸과 내 입이 당기는 맛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내 스스로 대견키도 하고. 암만.  

1 Comment

  1. 데레사

    2017년 5월 31일 at 11:00 오전

    침넘어 갑니다.
    저도 가죽 엄청 좋아 하거든요.구하기도
    어렵고 다룰줄도 모르지만 맛은 기막히게도
    기억합니다.
    맛있게 익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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