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카메라에 생명을 불어 넣다

한 때 사진기 수리 기술자를 꿈꾼 적이 있다. 1998년 회사를 그만 두고 먹고 살 궁리 끝에 엉뚱하게도 옛날 카메라에 빠져들면서다. 매일 만져보고 들여다 보는 게 옛날 카메라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옛날 사진기라는 것이 말 그대로 오래 된 물건이다 보니 고장도 잦을 뿐더러 정기적으로 손질을 해 줘야 그 수명이 유지될 수 있고, 또 팔더라도 제 값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카메라, 좀 고상한 말로 클래식 카메라(classical camera)는 대부분이 독일제다. 그 중에서도 원조로 꼽으면서 제일 귀하게 취급되는 것이 바로 라이카(Leica)다. 라이카의 메카니즘은 독일 기계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어떤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 정밀함과 기계적 정확성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모습도 앙증맞고 이쁘다. 라이카에게 따라붙는 별명이 ‘보석(gem)’이다. ‘독일 기술의 보석(gem of German craftsmanship)’이란 말에서 연유된 것이다. 

충일카메라 정 지학사장과 만난 인연도 라이카 때문이다. 라이카가 손에 들어오는 즉시 정 사장에게 보여주고 점검을 받으면서 부터다. 이상이 있으면 당연히 수리를 한다. 나는 라이카 수리 때면 항상 곁에 앉아 지켜 보았다. 그러다 문득 수리 기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손으로 뜯어보고 고쳐보면서 손에 익혔으면 한 것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그 생각을 접었다. 무엇보다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대표적인 게 수전증이다. 그리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좀 긴장하게 되면 그 증상이 나타나는데, 원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술이다. 미세한 나사를 끼우거나 뺄 때 손이 떨린다면 어떨게 되겠는가. 정 사장 곁에 몇 번 실습을 해보다가 투박만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접었다. 눈이 좋지 않은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정 사장은 나보다 몇 살이 많다. 그럼에도 나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젊다. 눈도 아직 좋고, 체력도 좋다. 술도 나보다 훨씬 잘 먹는다. 카메라 수리라는 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술은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 중의 하나다. 내가 알고 지내 온 카메라 수리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술을 잘 마신다. 정 사장의 수리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지켜보는 것은 지겹지가 않다. 그의 수리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당대 최고라는 찬사가 붙기도 한다. 사실 곁에서 지켜보면 손 놀림과 판단, 그리고 감각에 감탄이 나온다. 정 사장은 무엇보다 드라이버나 벤치, 조절기 등 수리 장비를 잘 다룬다. 미세한 나사를 끼우고 뺄 때의 그 정교한 손 놀림은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을 안긴다. 나는 그를 알고부터 이미 그 기술에 매료됐다. 2000년대 초, 언론재단과 준비 중이던 책자에 정 사장을 추천했다. 내가 쓰면 좋았겠었지만, 어떤 편견이 작용할까봐 다른 집필자로 하여금 쓰게 했다. 그 때 나온 책 ‘한 길을 가면 인생이 보인다’에 정 사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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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장의 수리방은 충무로에 있다. 명동에서 충무로로 옮긴지도 10년이 훨씬 넘었다. 그래서 충무로 나가는 길이 있으면 꼭 들린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는다. 카메라 일이 예전같지 않아 수리는 별로 안 하지만, 그래도 그에 관계되는 일이 있으면 그걸 핑계삼아 들린다. 나로서는 정 사장의 도움이 여러 면에서 크다. 가끔씩 수리할 게 있으면 정 사장의 도움을 받는데, 최선을 다 해 도와준다. 나로서는 뜸하게 정 사장이 외국에서 부품 구할 때 도운다. 그렇게 그렇게 같이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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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제와 오늘, 이틀을 정 사장 수리방에서 지냈다. 수리할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떤 이탈리아 여자 분에게 양도할 카메라인데, 구조가 꽤 복잡한 기종이다. 이름하여 콘타플렉스 TLR(Contaflex Twin Lens Reflex)이라는 이안 렌즈 카메라인데, 점검차 가지고 나가 손을 본 것이다. 이 카메라는 35mm 카메라이면서 렌즈가 두 개인 독특한 구조로 카메라 역사의 한 획을 장식하고 있는 희귀 모델이다. 1930년대 중. 후반에 나왔으니 80년이 넘은 카메라다. 셀레늄 노출계를 부착한 최초의 카메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구조와 메카니즘이 얼마나 까다롭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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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보내기 전, 집에서 점검을 하니 그동안 살아있다고 믿고 있던 노출계의 바늘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걸 점검해보려 정 사장에게 갖고 갔다가 크게 손을 보게 된 것이다. 노출계는 셀레늄 판을 좀 손질하니 되살아 났다. 그런데 노출치가 얻어지는 계기판이 문제였다. 노출치를 얻으려면 분명 필름 감도나 조리계, 그리고 셔터 속도와 맞물리는 연결장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게 없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국 카메라를 분해하면서 일이 좀 크게 벌어졌다. 카메라를 열어보니 결국 그 장치는 없는 것으로 판단을 했는데, 그래도 그 메카니즘의 원리와 장치에 관한 뚜렷한 결론은 못 내리고 카메라를 조립했다. 그 과정에서 정 사장은 크게 애를 먹었다. 정 사장 특유의 투덜거림이 몇 차례 나왔다. 미안하다고 했더니, 버릇 아닌감하며 씩 웃는다. 미안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애를 먹였으니 술을 사겠다고 했더니, 손 사래를 친다. 다음에 합시다. 언제? 언제든. 글쎄 그 게 언제? 그랬더니 또 다음에다. 날짜 정하지 않고 마시자는 얘기다. 정 사장은 항상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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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기분이 개운하다. 콘타플렉스 TLR이 훨씬 깨끗해지고 작동이 부드러워 졌다. 한 바탕 목욕을 시킨 기분이다. 정 사장이 나름 최선을 다해 CLA(clean, lubrication and adjustment)을 해 줬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 게 아쉽다. 그 아쉬움 속에는 정 사장의 성의를 떠나 보낸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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