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뉴스에 ‘로맨스 스캠’이라는 말이 나왔다. 로맨스(romance)에 스캠(scam)을 합성한 단어이니, 로맨스를 빙자한 신용사기라는 뜻인 모양이다. 국내적으로 사랑이나 애정을 빙자한 사기는 종류가 다양하고 많으니, 다들 익히 잘 안다. 그런데 영어로 ‘로맨스 스캠’이라고 하니 좀 생경한 것으로 들리는데, 그 이유는 이게 글로벌 SNS를 통해 자행되는 신종사기라 용어 자체가 외래어이고 또 그렇게 불러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페이스 북이니 트윗 등 글로벌 SNS 망을 통해 사랑이나 애정을 앞세워 사기를 치는 수법이 ‘로맨스 스캠’인 것이다. 이게 오늘 아침에 큰 뉴스거리로 떴는데, 들어보니 가관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서 40여 명이 당했고 그 액수도 무려 6억 원이 넘었다는 것이고, 국내 경찰이 인터폴을 통해 수사에 착수해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2명의 범인을 체포했다고 한다.
이런 사고가 오늘 아침에 보도되고 이른바 ‘로맨스 스캠’이 뭔가 대단한 것인 양 대서특필되면서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런 류의 사기는 이미 지난 해 말부터 그 단초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에 따른 주의와 경계의 글도 몇몇 있었다. 나 또한 지난 해 12월에 ‘페이스 북 신종사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로맨스 스캠’에는 반드시 여자가 등장한다. 낚시인 셈이다. 예쁜 여자를 앞세워 남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등장하는 여자는 실제 인물이 아니다. 사기 주범이 동원하는 여자인데, 대개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예쁜 여자 얼굴을 합성해 올린다. 이런 식으로 근자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여자는 미 여군들이다.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중동에 파견돼 있다며 자기소개를 하고 남자들을 유혹한다.
중동의 난민캠프에 수용돼 있는 왕족 출신이라는 식으로 접근해 오는 방법도 있다. 동정심을 유발케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SNS는 페이스 북이다. 페이스 북을 통해 친구 신청을 한 후 받아들이면 메신저를 통해 접근한다. 한 두어 차례 메시지를 교환하면, 보다 노골적으로 달겨든다. 이 때쯤이면 메신저보다는 이 메일을 통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내용은 뻔하다. 거액의 유산이나 한국에서의 투자를 통해 귀가 솔깃해지는 이윤을 앞세우면서 함께 하자는 것이다. 이에 함께 따르는 것이 노골적인 애정공세다.
유명인을 앞세운 수법도 있다. 대표적인 게 리비아의 독재자로 비명에 간 가다피의 딸 아이샤(Aisha)를 빙자한 경우다. 이름도 ‘프린세스 아이샤(Princess Aisha)’를 사칭하며 아이샤의 실제 얼굴 사진으로 접근한다. 지난 5월인가, 나에게도 접근해 왔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호기심에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랬더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기 아버지 가다피와 친했던 관계로 자기도 잘 알고 있다며, 반 전 총장의 주선으로 한국에 부동산 투자 운운했다. 그러다 갑자기 메신저가 불통이 됐다. 메신저가 불통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이런 경우는 현지에서 사기행각이 드러나 페이스 북 계정이 삭제됐을 때로, 그 때쯤이면 아이샤일 리가 없는 그 범인은 아마도 형무소에 갇혀있는 것으로 봐야한다.
시리아 난민캠프에 수용돼있다는 마기 조슈아(Magee Joshua)라는 여자는 자신이 영어 교사이고 남편이 군인이었는데, 시리아 내전에서 죽었다는 식으로 접근해 왔다. 이 여자 아닌, 사기꾼도 페이스 북 계정이 삭제됐다.
오늘 뉴스에는 사기를 당한 60대 남성이 나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 목소리는 사기를 당한 억울함보다는 사기를 친 그 ‘여자’에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 느낌을 준다. 되게 외로웠던 상태에서 그 ‘여자’에게 혹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뿌리칠 수 없을 정도의 집요하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했을 것이고, 그쯤 되니 이성적인 판단이 무디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SNS라는 게 인간 간(inter-human)의 소통을 통해 관계를 증진시켜 나가는 도구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인간의 감성을 빌미로 이런 방식의 사기행각에 이용되는 다른 측면도 있는 것이다. 양면성의 SNS를 도구로 한 이런 사기행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이해관계나 감정적 소구의 도구로 SNS에 빠져들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