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望’을 읽고 있다는 박 근혜 전 대통령

요즘 간간히 보고있는 책이 있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가 쓴 실록 대하소설인 ‘대망(大望)’이다. ‘대망’이 어떤 소설인지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것이기에 새삼 설몀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짤막하게 덧붙인다면,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난세를 평정해 천하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대망’을 지금 구치소에 갇혀있는 박 근혜 전 대통령이 읽고 있다고 한다. 오늘 어떤 신문이 전하기로 1심 재판을 끝내고 추가구속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수감이래 읽고있는 책이 바로 ‘대망’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읽은 책은 책의 목록에는 박 경리의 ‘토지’와 이 병주의 ‘지리산’ ‘산하’도 있는데, 책의 분량으로 봤을 때 ‘대망’은 긴 대하소설이기에 현재도 읽고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 신문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이 명박과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패한 후에도 ‘대망’을 탐독했다고 한다.

나 또한 ‘대망’이 첫번 째는 아니다. 1970년대 초에 읽었다. 10대 후반이던 그 때, ‘대망’은 충격적이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머리에 쏙쏙 들어와 지금껏 기억에 박혀있다. 두어 달 전, 문득 ‘대망’을 다시 읽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의 한 부분 때문이다. 어느 영주가 고난 끝에 성을 탈환한다. 공을 세운 가신들에게 상을 내리는 자리다. 가신들이 주-욱 엎드린 자리에서 한 가신이 영주더러 어떤 상을 내리겠냐고 묻는다. 그 영주의 답은 이런 것이었다. “모두 자결케 하라”는 것.
이 부분을 다시 찾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던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읽을 당시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목숨을 걸고 성을 탈환한 가신들은 충(忠)의 정점(頂點)에 와 있다. 더 산다면 충에 관한 한 내리막 길 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니 그 정점에서 자결케하는 것이 영주로서 내리는 가장 크고 의미있는 상이 아니겠는가. 주지하다시피 ‘대망’은 분량이 장난이 아니다. 도서관을 찾아 그 부분만 찾으려고 했는데, 찾아지지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읽자. 그래서 다시 보고있는 중인데, 아직 그 부분은 나오지 않고있다. 그 부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너무 빠져든 나머지 잘못 읽었을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니.

박 전 대통령에게 있어 ‘대망’은 2007년에도 그랬던 것 처럼 그녀가 특히 처지가 어려울 때 찾아 읽는 소설인 것 같다. ‘대망’은 이에야스가 난세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무수히도 많은 난관을 인내와 지혜로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현재 어려운 상황을 ‘대망’을 통해 마주해보려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 뿐이겠는가. ‘대망’에는 권력 주변의 무수한 인간상과 권력의 허망함도 그리고 있다. 모략, 간교와 중상, 그리고 충성과 배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엇갈린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든가. 그녀는 ‘대망’을 통해 이런 군상들을 새삼 반추해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 전 대통령이 ‘대망’을 읽고 있다는 것과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우연이다. 어이없는 짓거리로 세간의 조롱이 되면서 하루 아침에 영어의 몸이 된 그녀의 신세는 누가 보더라도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그녀가 저지른 짓을 두둔하거나 정치적으로 편을 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운명치고는 참 혹독한 운명이라는 것에 일말의 동점심은 든다. 그런 그녀가 ‘대망’을 읽고 있고, 나 또한 읽고 있다. 우연치고는 참 고약하면서도 싱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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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0월 12일 at 3:56 오후

    대망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어요.
    뉴스에서는 박 전대통령이 대망을 읽으며
    정치재기를 노린다고 하더군요.
    그속이야 모르지만 일단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도록 읽을수 있으니까요.

  2. koyang4283

    2017년 10월 12일 at 7:00 오후

    뭐 정치재개까지 노리겠습니까. 그저 그 책을 보며 권력의 무상을 느끼면서 인간으로서의 정한을 곱씹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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